단테는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서양의 3대 문호로 꼽힌다.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긴 여정을 그린 그의 ‘신곡’은 기독교 문학의 정점이라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단테의 지옥은 죄질에 따라 3단계로 구분된다. 동물적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죄가 가장 가볍다. 불륜 남녀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 다음은 인간의 특권인 이성을 남용한 사기꾼이다. 그러나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인간간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단테 지옥의 맨 밑바닥에서는 창조주이자 스승을 배반한 유다와 형제를 배신한 카인,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끼던(친자식이라는 설도 있다) 동료 시저를 배반한 브루투스가 사탄의 이빨에 씹히는 형벌을 받고 있다.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게 브루투스가 시저를 찌른 변이다. 단테가 공화국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사회 존립의 기초인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신뢰를 깬 것이 죄인 것이다. 그는 브루투스와 같이 시저를 반대했으며 끝까지 공화국을 위해 싸우다 자살한 카토를 연옥의 수문장으로 세웠다.
단테가 한국에 온다면 그의 지옥 밑바닥은 신뢰를 저버린 수많은 정치인들로 넘쳐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는 구실로 수십년 간 심복으로 따라다니던 박정희를 쏴 죽인 김재규, 형님으로 모시던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한 노태우, 낙선 후 “군사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던 노태우 밑에 들어가 대통령이 된 후 노태우를 감옥에 보낸 김영삼, 국민과 한 정계 은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대통령이 된 김대중, 경선에서 지면 탈당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인제 등등 신뢰와 약속을 개똥으로 아는 인물들로 한국 정치사는 채워져 있다.
노무현과의 협력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정몽준이 선거 몇 시간을 남겨 놓고 공조파기를 선언했다. 전 세계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노무현의 대북관을 이유로 삼고 있지만 그의 대북관이 어떤 지는 한국에서 젖먹이를 빼고는 다 아는 일이다. ‘노무현이 차기를 보장해 주지 않아서’ ‘한나라당에서 다음을 약속 받고’ ‘현대가 걸려서’ 등 온갖 억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선거 직전 공조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놓고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둘러대는 그의 정신상태가 정상인지 의심스럽다.
한국 정치인들은 지난 50여년간 줄기차게 국민들을 실망시켜 왔다. 차세대 주자로 불리는 이들의 최근 작태를 보면 앞으로도 오랜 기간 한국 국민들은 실망하며 살게 되리라 낙관해도 큰 잘못은 없을 것 같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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