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뉴욕을 떠나 서울과 인천을 방문해 취재도 하며 책도 냈다. 그리고 23일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취재는 한국감리교 미주선교 100주년기념행사였다. 책은 처음으로 수필집 한 권과 시집 한 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수필집은 5년 동안 뉴욕한국일보를 통해 나간 칼럼을 추려서 만든 것이다. 시집은 약 20년 동안 써왔던 시들의 묶음이다.
2주간의 일정이었다. 가는 날, 오는 날 이틀 빼고 나에게 배정된 날 수는 약 10일밖에 안됐다. 출장차 인천으로 가 3일을 지냈다. 출판사에는 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여 교정을 보았다. 그래도 책이 나온 후 오자가 발견됐다. 취재한 것을 한국일보 본사에 들어가 뉴욕으로 전송할 때 꼭 친정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고국 첫 방문은 1980년 도미 후 18년 만인 1998년에 있었다. 이 때 쓴 칼럼에서 나는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란 그 누구의 말을 빌려 비교한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서울의 골목문화와 놀이, 먹자 문화에 대해 쓴 사실이 있다. IMF가 난지 1년 만이었다. 그래도 서울은 흥청흥청 저녁만 되면 술집마다 사람들로 붐볐었다.
IMF가 시작되고 5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마지막해인 올해. 대선을 불과 얼마 남기지 않고 나간 고국의 풍경은 의외로 대선의 열기는 실감나지 않았다. 잠잠했다. 내가 서울에 머물 당시 노무현과 정몽준과의 단일후보가 결정되기 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선 따위와는 상관없이 서울의 밤거리는 흥청망청 4년 전의 분위기와 똑 같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은 "빨리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며 김대중 정권을 "조폭 정권"이라며 흥분해 성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택시운전사들은 "서민들의 삶은 IMF가 난 해나 지금이나 별로 상향된 것은 없다"며 "서울을 비롯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현상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뉴욕과 서울을 비교하며 이번에도 생각한 것은 서울엔 고층 아파트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인천에서 볼일을 보고 의정부까지 전철을 타고 가는 1시간 30여분의 시간동안 나의 눈에 비쳐진 고층 아파트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또 수없이 지어지고 있는 고층아파트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지만 그 아파트로 들어가 살 수 있는 서민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서울의 40-50평 아파트는 장소와 경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5억 내지 7억 원이라고 한다. 80평에서 90평 정도는 약 10-12 억원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다 한다. 달러로 환산하니 100만 달러가 된다.
화폐가치가 서로 다르다고 하지만 미국에서의 10만 달러는 굉장히 모으기 힘든 돈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10만 달러 즉, 1억은 별로 돈도 안 되는 것 같이 사람들은 얘기하는 듯 했다. 물론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택시 운전사 한 사람에게 꼬치꼬치 물어 수입을 알아냈다.
하루 12시간 25일 근무를 하고 한 달에 버는 것은 대략 1백20만원 정도였다.이 운전사는 "아내도 일을 해 합치면 한 달에 약 200여 만원을 번다"고 했다. 그 액수는 네 식구가 겨우 한 달을 살 수 있고 저축은 한 푼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서 서울의 ‘부익부 빈익빈’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익부 빈익빈’,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생활 편이의 차이는 그렇게 심하지 않다.
미국에서의 22년 생활동안 작은 아파트 한 채가 우리 가정의 전 재산이다. 아직도 은행 납부금이 끝나지 않았으니 내 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사는 집 정도면 서울에서는 아주 작은 아파트에 불과하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은 "아파트라도 한 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한다. 서울의 ‘억억’ 아파트에 비하니 너무 초라한 감이 든다.
이모저모로 다시 찾은 고국에 가본 나의 심정은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책을 내 기쁘기는 했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하기에 그렇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회창이든 노무현이든 정말 서민들을 위해 정치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바란다. 이번 서울 방문길에 책 두 권을 내자 서울의 출판사 간부가 "이란성 쌍둥이 둘을 낳았습니다"라고 했다.
책 한 권 만드는 것을 ‘출산’에 비교한 것이다. 지난 3월부터 준비해 11월에 낳았으니 인간처럼 10개월만에 탄생했다. 책 내기에 격려로 도와준 뉴욕한국일보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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