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과 함께 며칠 전 대낮에 LA 인근의 한 샤핑몰에 갔던 한 한인은 샤핑몰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어색했던 상황을 잊지 못했다. 이 한인은 주차장에서 차를 타려는 순간 남루한 차림의 한 백인 남자가 다가오더니 “말을 못하니 도와달라”고 두 번이나 애걸했으나 거절했다고 했다.
옆에 있던 아들이 “아빠 이 사람은 벙어린데 왜 도와주지 않아?”하고 묻자 이 한인은 “벙어리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없고, 진짜 말을 못한다 해도 젊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해서라도 벌어먹어야지”라고 설명했으나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한인은 “불과 1주일 전 다른 샤핑몰에서 벙어리라며 도와달라는 히스패닉 여자에게 선뜻 돈을 준 아빠의 모습과 정반대였기 때문에 아들이 어리둥절해 한 것 같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남자에겐 인색하고 여자에겐 후한 아빠로, 또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있어서 소신 없이 기분에 따르는 아빠로 비쳐질까,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손님맞이로 LA 공항에 나간 다른 한인은 몇 발짝 앞에 하얀 옷을 입은 자선단체 봉사자가 바구니를 들고는 헌금을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마주친 눈을 피하고는 모른 채 옆으로 비켜갔다고 했다. “평소엔 주머니에서 동전이라도 꺼내 주었는데, 요즘엔 혹시 이 자선단체 헌금이 엉뚱한 조직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은 든다”고 심중을 털어놓았다. 이 한인도 자신이 너무 인색한 게 아닌가 자문했단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도와주자는 원칙론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게다. 하지만 불우이웃이나 이들을 돕자는 움직임을 주차장에서, 도로에서, 길거리에서, 또 우편물로도 접하게 되니 일종의 파상공세로 느낄 만도 하다. 도로에서 차가 잠시 섰을 때 창문으로 다가오는 무숙자들의 구걸행위가 “돈주면 더 망칠 뿐” “그래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라는 갑론을박 거리가 되기도 했으니 이웃돕기가 간단한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연말을 맞아 불우이웃을 돕자는 캠페인이 도처에서 일고 있다. 나병환자의 손에 입을 맞춘 성 프란시스코, 길바닥에 버려진 환자의 썩어 가는 상처를 닦아준 마더 데레사, 쌀쌀한 새벽에 LA 다운타운에서 무숙자들에게 빵과 따끈한 음료를 매일 나눠주는 목회자를 행동으로 따라하기는 불가능할 지 모른다.
게다가 ‘이웃돕기 딜레마’가 귀찮게 맴돌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연말에 ‘큰사랑’을 퍼주는 그들의 정신을 마음에 간직하며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사랑’을 나누면 어떨까 한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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