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만의 귀향남편의 한국출장길을 따라 나서는 그 선배와 점심을 하기위해 마주 앉았다. 해마다 추석이 지나고 이 맘때가 되면 한국의 불붙는 듯한 단풍이 눈물나게 그립다고 호소하던 그 선배가 이제 22년만에 귀향을 한다고 한다. 현실을 그냥 놔두고 버선발로 따라 나서고 싶은 마음 반,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나서는 선배를 배웅도 할 겸 마주 앉았다. 소풍날 기다리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의 모습으로 얼굴은 많이 상기되어 있다.
떡만두국을 제대로 못 넘기고 앉아있는 선배의 눈빛속에 타임머신은 30여년전으로 날아간다. 그선배를 처음 만난건 초등학교 2학년때이다. 내가 살고 있었던 남도의 한 자그마한 학교로 서울아이가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전학을 왔었다. 그당시 유행했던 만화 “캔디”에 나오는 일라이저처럼 긴머리에 굵은 롤을 말아 늘어 트렸었다.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우리들 사이에서 서울말씨를 쓰는 선배는 음성자체도 맑고 예뻐서 아나운서(?)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전교생이 겨우 100여명이 넘었던 우리학교는 무슨행사를 하든지 전교생이 모두 참여해야만 했었다. 그선배가 아버지를 따라 다시 서울로 전학가게될 때까지 3년동안 우리는 운동회때는 함께 뒹굴었고 학예회때는 함께 연극도 하고 합창도 하며 그렇게 많은 추억을 쌓았었다. 그리고 추석이 가까워올 쯤에는 학교주위에 단풍이 진하게 물이들고 그 사이사이로 늘어져있는 감나무들에서 감이 후두둑 떨어져 방과후에는 감을 주워 먹곤 했던 추억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렇게 선배와 헤어졌던 나는 중학교때 잠깐 스친적이 있긴 하지만 그후 선배는 다시 가족과 함께 미국이민을 가게되어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한국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날 우연히 십수년만에 그선배와 다시 연결이 되었고 내가 교포청년과 결혼하게 됨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린 그렇게 지금까지 10여년을 서로의 남편들도 잘 모르는 우리들만의 추억을 나누며 살아왔다.
“진아, 나 진짜 오늘 한국간다!”
남편의 손을 잡고 호젖하게 떠나는 선배의 뒷모습속에 그리운 고향이 묻어있다. 고향은 언제나 그립다. 부모 형제가 있어서 더욱 그립다. 비록 함게 뒹굴던 친구들이 없더라도, 추억이 새겨져 있는 정취가 사라졌다해도 고향은 그립다.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아 익숙한 곳이 되었어도 조금은 불편한 고향이 더욱 그립다. 따뜻한 온기가 섞인 고향의 흙이며 바람이며 나무며 하늘이며 모든것이 속속히 그리워지는건 나는 어찌할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오늘처럼 겨울비라도 떨어질 것같은 스산한 날씨엔 더욱 고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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