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태풍 ‘루사’로 인한 재산피해가 6일 현재 4조4천억을 넘어 태풍재해 사상 최대 피해액으로 기록되고, 전국에서 2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며 10만여명 이상이 난민생활을 하는 등 수해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강원 일대의 고립지역의 피해가 집계되지 않아 피해액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며 복구 예산은 6조원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진흙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강릉지역 주민 김홍기(37)씨는 “수도물이 나오고 있지만 마실물이 없어 고통이 더 크다”며 사흘이 지나 생수 2통을 지원받고 눈물을 흘렸다.
“이곳이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능교.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태풍 ‘루사’가 강타하면서 시가지가 고립됐던 경북 김천 대덕면의 한 주민이 폐허가 돼버린 자신의 가옥을 보면서 한탄의 눈물을 흘렸다. 전기와 전화마저 불통인 대덕면은 토사와 뿌리채 뽑힌 가로수로 뒤덮여 마을 전체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으며 축사는 폐사한 닭과 돼지로 견딜 수 없는 악취를 뿜어내고 있다고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 가옥이 침수되거나 무너져 내려 인근 학교로 대피한 주민들은 하루 2~3차례 날아오는 헬기에 목숨을 내맡기고 있는 실정으로 전장터가 따로 없는 형국이다. 생수와 빵은 아무리 공수돼도 부족하고 밤만 되면 칠흙 같은 어둠과 한기에 수재민들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수재민 김학조(62)씨는“재산목록 1호인 소와 돼지 60여 마리가 태풍에 모두 폐사했고 양파밭도 송두리째 패여버렸다”며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수해 복구작업이 본격화 되면서 당초 우려했던 대로 수인성 질환 등 각종 질병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어 재해 및 보건 당국에 비상이 걸리고, 침수피해지역에 대한 의료진과 의약품의 충분한 공급과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재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긴급 진료실에는 피부병과 눈병, 그리고 배앓이를 호소하는 주민 수백명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고, 한편에선 장티푸스 예방백신 부족으로 미처 접종을 받지 못한 주민들로 야단이다.
그러나 수해지역에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과 전기가 끊겨 짜증나고 고통스러운 재해 현장에서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있어 수재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
강릉시 교동의 한 목욕탕은 식수난이 극심해진 2일부터 목욕탕 밖으로 고무호스를 연결해 인근 주민들에게 지하수를 나눠주고 있다. 목욕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목욕탕에 공급할 물이 부족한데도 이웃을 위해 ‘나눔의 사랑’ 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수해지역 주민들에 대한 이런 배려는 콩나물 공장과 여관, 식당 등 지하수를 개발한 거의 모든 업소에서 이뤄지고 있다.
삼척시 남양동 K모텔은 3일 지하 사우나시설을 하루 동안 무료로 개방했으며 삼척시 P호텔은 자체 버스를 이용해 외곽지역을 돌며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강릉시 자원봉사센터에는 수해복구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 3,000여명이 몰려들었다. 동해시 삼화동 등 고립지역에는 피해를 본 이웃을 돕기 위해 1시간여를 걸어서 물과 삽을 들고 들어오는 주민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으며, 서울에 사는 대학생 이모씨(24)는 자원봉사센터를 찾아와 “가장 피해가 큰 오지에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렇듯 자원봉사센터에는 수재민을 돕고 싶다며 안내해 달라는 개인과 단체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으며 미주 동포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틀란타 한인회와 본보가 공동으로 전개하고 있는 수재민 돕기 모금운동에 본사 직원은 물론이고 한인회, 불우이웃돕기, 민주평통, 창고식품, GBM 등 일반 단체 및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약속했으며, 아틀란타 교회협의회는 이미 수일전에 교계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본보 미주본사 및 13개 지사가 미 전역에서 동시 다발로 펼치고 있는 수재민 돕기 켐페인에 고사리 손으로 돼지저금통을 들고 오는 어린이들로부터 70 노인까지 ‘사랑의 온정’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들 각자가 조국의 일원으로서 모국의 어려움이나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민족애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두고도 자발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 우리 사회는 노블레스 어블라이지(noblesse oblige)가 결여된 사회다. 노블레스 어블라이지는 문자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지도하거나 대변하는 사람이 져야 할 의무’라는 뜻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자기자신 이상으로 남을 사랑하는 힘과 자기자신의 이익 이상의 것을 위해 행동하는 힘’이란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좋은 일은 누구나 생각한다. 허나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조국이 잘 되고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일부이다. 한 개인은 인류 전체의 일부이자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사회적 자연적 환경의 일부인 것이다. 좀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과의 삶을 공유하는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깨우침은 우리들의 생활을 살찌게 한다.
본국 수해 현장에서 일고 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생명에의 사랑’이나 ‘인간회복’은 우리가 수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이다. 삶은 이런 교훈을 매일 매일 우리에게 주고 있다.
/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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