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옷을 잘 입어도 안되고 못 입어도 안되고 오랜만에 남들처럼 긴 머리를 하고싶어도 너무 말이 많아서 못해요. 애들 좋아하는 운동화 하나 맘놓고 사줄 수가 없어요" 옛날에 내가 다니던 어느 조그만 교회의 사모가 나를 믿고 하는 하소연이었다.
어쩌다 토요일 아침 새벽예배에 가면 통곡하며 우는 사모의 목소리가 매번 들린다. 알 수 없는 그 통곡 소리에 내 마음도 같이 아파온다. 목사는 그들이 원해서 선택한 직업이지만 많은 경우의 사모들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모의 자리에 앉게 된다.
’사모님’이라는 존칭과 함께 교회의 어머니로서 힘겨운 책임도 부여받는 동시에 ‘자기’라는 단어는 잊고 살아야하는 힘든 자리이다. 그래서 사모의 모임으로 열리는 세미나에 가서 그들만의 고통을 서로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받고 온단다. 며느리와 같이 사는 시어머니가 친구들을 만나 겹겹이 쌓인 며느리의 불만을 속이 후련하게 하소연하고 집에 돌아올 때는 얼굴에 핑크빛이 돈다고 한다. 며느리 역시도 시어머니 사이에 알 수 없는 갈등을 친한 친구에게 맘놓고 쏟아 놓고 나면 다음 하루를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시어머니를 더 잘 모시게 된 단다.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던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고통들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호소하여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내 가정일을 남에게 말한다는 것은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내 얼굴에 먹칠하는 일일진데… 그렇다고 그 모든 고통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얼굴엔 본인이 모르는 쓴 웃음을 지우며 부처님 인자한 모습으로 살아가다보면 십중팔구 마음 속의 병이 안 생긴다면 다행이랄까?
그래서 우리 작은 인간들은 나를 믿어 주는 어느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게 되나보다. 실인즉 하소연하는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인간의 입으로 조금씩 보태서 전달되다보면 손 쓸 수 없는 큰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기에 제일 안전한 방법은 하나님께 엎드려 내 맘에 있는 고통을 호소한다면 자존심을 상할 일도 없을 것이요. 비밀은 영원히 보장될 것이며 후련해진 마음속에, 병은 자리잡지 못할 것이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께 엎드려 통곡하며 오는 사모님의 하소연은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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