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무섭다. 4월엔 도망가고 싶다. 4월이 오기 전에 어디 이름 모를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떠났다가 5월이 돼서 다시 돌아와도 되면 좋겠다. 10일은 재산세 마감, 15일은 소득세 마감이 버티고 있는 4월.
세금을 내야하는걸 보면 분명 벌은게 있다는 얘긴데, 번 돈은 다 어디 가고 돈 낼 일만 까마득하다.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돌봐줄 식구가 줄줄이 딸린 것도 아닌데 일년내내 벌은 것 정말 다 어디로 갔지?
’이쪽에서 얼마를 끌어다가 저쪽거랑 합치고 요거조거를 이리저리 둘러치고 메치고...’ 머리 속으로 각종 장부를 썼다 지웠다 하다보면, 머리운동을 너무 해서 큰 골 안에 알통이 생길 지경이다.
이럴 때, 수입 있을 적마다 따로 얼마씩 떼어 두었다가 내면 되지 그러느냐고 충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순진한 건지 약 올리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수표 한 장 들어올 때쯤 되면 나가야 할 일은 열댓가지씩 미리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마당에. 주변에 누가 돈 때문에 고민하는 걸 참고 못보는 내가 문제지만 어찌 생각하면 산다는게 그저 다달이 날짜 맞춰 페이먼하려고 굿하다가 끝나는 일 같기도 하다.
월급장이 시절엔 매달 ‘월급이 5백불만 더 됐어도...아니 다만 3백불이라도...’하며, 메꿔지지 않던 단 몇백불이 아쉬워 애를 썼다. 그나마도 다니던 직장을 하루 아침에 그만 두고 났을 땐 마켓 갈 일조차 막막했던 적도 있었다.
주머니 속의 20불을 꼭 쥐고, 꼭 필요한건 카트 윗칸에 놓고 사고 싶은건 밑칸에 두었다가 "잠깐, 여기까지 일단 합계가 얼마죠?"를 한두번씩은 물어가며 골랐던 물건을 슬그머니 도로 놓고 나오던 그때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 부럽기도 하다. 다만 몇십불, 다만 몇백불의 간격만 채우면 되었던 당시 살림의 그 조촐함이 부러운 것이다.
예펜네가 겁도 없지. 어쩌다 단위를 이렇게도 불려놓았나. 자식이 크면 걱정도 커진다고, 세상엔 작은 집도 없고 큰 집도 없다고, 엄마가 그러신다.
토마토 한 상자를 값도 안보고 덤썩 들어다가 이미 가득찬 카트위에 올려놓던 내 앞줄의 살집좋은 부인네의 거리낌없던 동작을 어금니 꽉 깨물고 바라보던 그 여름날의 마켓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자식이 커지듯 씀씀이가 커지니까 걱정의 단위도 그만큼 커져버렸다.
아무리 조그만 집도 규모있게 정돈하고 가꾸면 넓은 집이 되고, 제 아무리 커다란 집도 늘어놓고 어지르면 여전히 비좁은 집이라던 말씀대로 나는 평생 모자라는 방 하나를 찾아 헤매고 다녀야할 것 같다. 결국은 크레딧카드 회사에서 날라온 수표를 보태 그 무서운 4월을 막은 주제에, 며칠 뒤에 들어올 수입을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을지 다 생각해두었으니까.
거지는 25전이 모자라 햄버거를 못 사고, 자존심 내세운다고 회사 그만둔 나는 10불 여유가 없어 토마토 한 상자에 자존심도 없이 침이 고이고. 3백불만 더 있으면, 딱 천불만 더 있었으면 당장에 시름을 잊을 것 같은 수많은 ‘나’들이 주변에 지천인데 내년 4월 걱정은 그때 가서 하지 뭘.
오늘 해야할 지출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내년에 낼 세금을/ 오늘로 앞당겨 준비하지 말라/ 돈이란/ 언제나/ 모자라는 것/ 백만장자도/ 생활고에/ 시달린다/ 옳소, 옳소/ 돈 있을 땐 나눠 쓰고/ 돈 없을 땐 카드 쓰자/
혼자서 웅변을 늘어놓는데 어디선가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에구, 싸다 싸. 그러니까 맨날 그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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