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야구격언 가운데 “어느 팀이든 시즌 개막일에는 모두 일등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즌 초반에는 모든 팀들이 희망과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신이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몬트리올 엑스포스 팬이라면 이 격언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엑스포스에게 있어서 이번 시즌 개막일은 올 시즌 내내 진행될 장례식 행렬의 서곡일 뿐이었기 때문이다.엑스포스의 토니 타바레스 회장은 이렇게 비유한다.
“올해 몬트리얼 엑스포스의 형편은 마치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말기 암환자와 같다”
그는 엑스포스의 장례식에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팬들이 많은 티켓을 구입해 주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지난 십수 년간 만성 경영난에 시달려 온 엑스포스는 이처럼 난치병에 걸려 사망 일보직전에 놓여있다.
그간 투자를 아끼는 자린고비 구단주들과 형편없는 관중 동원력이 빚어낸 예고된 결말이었다.
엑스포스는 지난해 평균관중 7,935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각 구단의 평균관중 숫자보다 2만4,000여명이나 뒤진 수치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겨울, 이미 엑스포스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선수노조가 메이저리그 집단협상협약 위반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소송은 아직진행중이다. 그러나, 이제 선수노조의 마지막 카드인 집단협상협약 마저 시한 만료된 마당에, 2002년 시즌 종료와 함께 엑스포스의 운명도 시한 만료될 수밖에 없다.
엑스포스는 올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든,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든 상관없이 162게임을 소화한 후에는 팀이 자동 해체된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서 팀해체를 모면할 경우에는 오는 11월, 연고지를 다른 도시로 변경하게 될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올 시즌 엑스포스의 처지는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상 가장 비참한 시즌이 될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 한 일이 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버드 실리그는, 엑스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엑스포스의 전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로 하여금 플로리다 말린스를 매입하도록 종용했다. 로리아는 플로리다로 내려가면서 엑스포스의 메니저와 코칭 스태프를 비롯, 팀운영과 관련된 물품들까지 죄다 챙겨서 떠나버렸다.
그 결과, 엑스포스는 다른 29개 구단주들의 공동관리체제로 1년간 운영되는, 글자그대로 야구보호 감호실에 수용된 고아처지로 전락했다.
엑스포스는 지난 겨울부터 실제로 고아취급을 받아왔다. 셀리그 커미셔너는 타 구단들이 일찍이 팀정비를 완료하고 스프링시즌에 돌입하기 불과 3일전에야 타바레스 회장과 제너럴 매니저 오마 미나야, 감독 프랭크 로빈슨을 고용했다. 42세의 미나야는 매니저 경력 첫 작품으로서 새미 소사와 계약을 체결했던 인물이다.
엑스포스는 올해 시즌티켓을 1,000여장 밖에 팔지 못했다. 하지만, 엑스포스의 개막 전에는 놀랍게도 3만 5,000여명에 육박하는 관중들이 운집했다. 이런 대관중이 운집한 것은 아마도 개막전 상대팀이 플로리다 말린스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말린스가 지난해까지 엑스포스의 구단주였던 로리아의 말린스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개막전에서 가슴에 ‘엑스포스’라는 글자를 그린 한 십대 팬은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로리아에게 쌍욕을 해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개막전에서는 또, 한 열성팬이 “로리아, xx나 빨아라”라는 육두문자를 써넣은 피켓을 들고 말린스 덕아웃 위에 올라가 요란한 몸동작의 춤을 추는 순간, 스테디엄이 떠내려 갈 것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프랑스권과 영어권 문화가 혼재하는 퀘벡주 사람들은 엑스포스의 운명에 대해서 거의 다 체념한 듯하다. 그러나, 열성팬들은 퀘벡의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엑스포스의 운명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기장 상층 좌석에 앉은 진 로리는 “엑스포스가 이곳에 존재하는 날까지 변함 없이 엑스포스를 성원하겠다”고 말했다. 로리의 낙관론은 캐나다와 프랑스 중, 다분히 캐나다적 기질에서 나온 반응이다. 반면, 옆 좌석의 마이클 롬바트는 “비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왔다”라며 침통해 했다.
올 시즌 개막직전 플로리다 말린스의 신임구단주가 된 로리아는 최고의 구원투수를 트레이드 시킴으로써, 예의 자린고비 기질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개막전에서도 말린스는 9회까지 6대1로 앞서며 승리하는 듯 했으나, 싼값에 데려온 구원투수가 말린스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덕분에 엑스포스 팬들은 짜릿한 역전의 감격과 함께, 지난날 로리아 밑에서 경험했던 씁쓸한 과거를 되새겨야 했다.
롬바트는 “우리는 지난 수년간, 로리아가 뛰어난 선수들을 부자구단들에 하나 하나 팔아 넘기는 것을 보아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는 11월 엑스포스 선수들이 무더기로 경매시장에 나서는 상황을 머리 속에 떠올리면서 “그전처럼 한 명씩 팔려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보다는 차라리 기분이 더 홀가분할 것”이라며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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