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올 것을 알았다.
일찍 일어날 계획을 하고 잠에 들었지만, 유난히 커다란 비바람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마치 빨간 기와지붕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와도 같았다.
비가 오면 좋다. 비는 하얀 눈송이까지 길가에 내려준다. 어느 땐 차 위에 소복이 내린 벚꽃 잎을 눈송이로 착각하게도 한다. 비가 오면 정말 좋다.
얼마 전에 겨울준비를 한답시고, 우산과 모자를 샀지만, 그동안 우산은 한번정도 펴 보았고, 모자는 아직도 써 보지 못했다.
비가 오면 총총걸음이 우산을 능가한다. 비가 올듯하여 우산을 가지고 집을 나서 회사에 도착하면, 비가 오지 않아 차안에 우산을 두고 내린다. 그러다 사무실에서 외출을 할라하면 비가 오고, 우산을 차에 두고 내렸으니, 차까지는 비를 맞아야하고... 뭐 이런 연속이 아닌가 싶다. 행여 우산을 썼다해도 젖은 우산 처치 하긴 더욱 곤란한 일이 된다.
지난 몇 일, 빗속에서 계속 일을 했다. 총총히 걷기도 했지만 비를 맞으며 들고뛰기도 했고, 혼자 일 때는 천천히 걷기도 했다. 비가 옷 위에 내려도 빗방울이 얼굴에 닿은 마냥 시원함을 느끼기도 한다. 혹은 빗방울이 속눈썹에 대롱대롱 달리기도 한다.
비가 오는 밤이면 안방 화장실의 문을 열어두고 잠을 잔다.
바로 옆집엔 그늘을 만들기 위해 연두 빛 긴 플라스틱을 처마 밑으로 밭쳐 놓았는데,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두둑 빗발 내리는 소리가 화장실의 작은 유리창을 통해 분명히 들린다. 이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고, 이 소리는 밝은 색깔이 되어 귀에 들려온다.
옆집 아줌마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유난히 크지만, 거의 조용히 지내신다. 변함 없는 든든한 나의 이웃이다. 아이들이 그사이 결혼하여 얼마 전부터는 손자손녀들의 목소리를 담 넘어, 화장실 유리창으로 들려주신다. 달가닥 달가닥 설거지하는 소리도 들려주시고 할머니 물 좀 줘요 하는 손녀의 목소리도 들려주신다.
비가 오는 아침이면 살짝 커튼을 들치고 얼마나 비가 오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하늘이 검푸른가를 보고, 비에 젖어도 무난한 옷과 구두를 준비한다.
비가 오는 아침엔 모든 것이 비에 젖어 더욱 맑게 보인다. 마치 멀리서 장작을 태우는 듯 한 냄새가 유리창을 통하여 보인다. 비가 오면서도 안개가 끼여있는 듯한 풍경. 가로등 밑으로 거꾸로 선 긴 삼각형의 공간에 심한 비가 내리기도 한다.
이월의 나는 차분하다. 명쾌하다. 즐겁다.
내 인생에 서 있는 이 시점, 어떠한 삶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데, 그 어떠한 목적을 곧 찾을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인지 이제야 어른이 된 기분이고 철이 든 기분이다.
어쩌면 내 인생의 삼분의 이를 이미 산 것인지도 모른다는 이 깨우침 하나만으로도 나는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월의 비는 나의 영혼을 촉촉이 젖혀주기에 또한 즐겁다. 아무리 젖어도 추위를 모르니, 또한 즐거움이다.
이러한 즐거움은 곳곳에 피어있는 벚꽃에서 찾을 수 있고, 몽우리로 곧 피어 날 준비를 하고 있는 연보랏빛 목련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만나는 사람들의 깊은 정에서 찾을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한다는 신뢰방울을 바라보고, 깊은 즐거움을 경험한다.
이래서 이월의 비는 나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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