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희<해외문학 문인협회 회원, 칼리지 파크 MD>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는 요즈음 같은 겨울에는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 앉아 따뜻한 차(茶)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평소에 예사로운 일을 다반사(茶飯事)라고 하듯이 차 마시는 일은 식사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일이다. 좋은 차를 마시면 머릿속이 밝아진다. 좋은 차를 마시기 위해 정성 들여 끓이는 과정과 찻잔에 담아내는 자세가 차의 향기를 높여 분위기를 살리는 것 같다. 이젠 한국의 차도 종류가 많아졌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생강차, 대추차, 율무차, 꿀차 등을 즐기고 있다.
얼마 전 중국 고전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작가 심복(沈復)이 쓴 부생육기(浮生六記)란 책을 읽었는데 그 중 부부가 차를 즐기던 장면이 인상깊어 기억에 남는다.
아내 운(雲)이 아침저녁으로 차를 낼 때는 언제나 그윽한 다향이 방안에 가득 넘쳐 났다. 남편이 묻기를 "어찌 그대가 끓인 차는 이 같이 향기가 좋을까? 그 비결이 궁금하오"했다 아내는 상냥스레 웃기만 한다. 하루는 해질 무렵 아내가 얇은 헝겊조각에 한번 끓일 분량의 차를 써서 살그머니 뒤뜰로 나가는 걸 우연히 보았다. 남편이 멀리서 보니 아내는 연꽃중에서 가장 빛깔이 곱고 탐스러운 꽃을 골라 그 화심에 차봉지를 놓고 꽃대에 당사로 묶어서 표를 해 놓는다. 그 이튿날 아내는 어제 표를 해두었던 꽃대를 찾아내 밤새 꽃향기에 젖었던 차를 가지고 정성껏 끓여내니, 그 향이 어찌 향기롭지 않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정성을 다해 남편을 대접하는 아내의 마음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부부가 살아가는 길은 만남의 인연으로 시작하여 숱한 고뇌의 얽힘 속에서 완숙한 삶과 성숙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간이란 상대적인 동물이다. 남남이 만나 맺어진 부부는 가정이라는 울안에서 상대의 빛깔에 따라 물들기 마련인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살아온 흔적은 보이지 않고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 살아버린 듯한 그 허무함과 쓸쓸함이 가슴에 찬바람만 불게 할 때도 많았다.
눈 비 내리고, 구름 햇빛 자리 바꾸듯이 성숙의 삶은 고통과 희생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번뿐인 인생이 아닌가?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겨울의 나복처럼 불꽃으로 자기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다. 남에게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명을 연소시켜 재로 남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라는 것이 그날 그날을 먼 과거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산은 오를수록 산세가 험하듯이 인생의 현실도 갈수록 험난하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산 중턱을 훨씬 넘어서 또 무엇을 갈구할 것인가를 생각하며삭막한 이 겨울에 나는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며 묵묵히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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