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한경대부교수 아메리칸대 파견경실련 예산 감시위원회 위원장 >
지난달 29일 부시 대통령은 의회에서 국정연설(State of Union)을 했다. 이 연설이 특히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이란, 이라크, 북한을 두고 ‘악의 축(axis of evil)’ 이라고 표현한 점 때문이다. 마치 2차 세계대전의 주축인 이탈리아, 독일, 일본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며칠 간 방송에서 남(South)과 북(North)을 구분하지 않은 채 한국(Korea)을 거론하는 것이 매우 거북스럽게 느껴진다. 실제 무슨 행동으로 들어갈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이날의 연설 반 이상이 테러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고, 초청된 사람들도 전부가 전쟁과 관련한 사람들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임시 지도자를 초대하여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미국의 힘으로 자유를 보호했고, 그 나라를 이끌 사람이며 미국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그 어떤 요소도 적극적으로 제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며칠의 폭격이면 끝날 몇몇 국가가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렵다는 뉘앙스를 주었다.
그러나 88번이나 박수가 나온 이날의 연설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날의 연설은 2월 4일 대통령이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기 전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의회에 와서 이야기하는 의미가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3번째 의회에서 하는 연설이긴 하지만, 그전의 연설이 주로 위기 관리 과정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이번은 정상적인 국정의 연장이었어야 한다.
미국의 예산감시 시민단체인 National Taxpayers Union이 이날의 연설을 분석해보니 비국방 분야에서 1,066억 달러 증가, 국방비에서 514억 달러의 증액이 예견되어 역대 어느 공화당 정부에 비해서도 지나친 예산 증가를 고려하고 있는 연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자원봉사를 통한 시민사회의 기능 활성화를 이야기하면서 Freedom Corps에 58억을 지원하려는 예산팽창의 의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실제 전시상황에서 작전권을 행사하는 것과 전쟁 수행에 필요한 예산을 배분하는 작업은 별개이다. 무슨 장비를 왜 구입하는가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날 많은 민주당 의원이 연설에 대해 냉담했다. 하원 민주당 리더인 게파트(Gephardt) 의원이 정책 논의는 상호 신뢰(mutual trust)에 기초되어야 하며, 우리가 대통령을 신뢰하듯이 대통령도 의회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다.
강대국의 흥망을 연구한 폴 케네디 교수의 결론은 군사비가 가장 높을 때 다시 말해 가장 강한 상태에서 나라가 망한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투를 할 수는 없다. 힘의 균형을 조절해야 한다.
9월 11일의 테러 이후에 미국의 반테러 전쟁에 자유국가들이 동조했던 것은 테러가 갖는 반인륜적 의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날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대외적인 도덕성의 요구에 비해 강한 미국이 가져야 할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향후 정치권에 커다란 반향을 가져올 엔론의 부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지금 부시행정부는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에 엔론이 간여한 증거를 찾기 위해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원칙에 가까운 의회 회계검사국(GAO)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정치자금의 개선과 관련된 정치적 도덕성에 대해서는 함구함으로써 대내적인 도덕성의 기준에서는 균형을 잃고 있다. 탄저균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것이 미국 강경론자의 소행이든 아니든 진행되는 상황을 이야기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사실 9월 11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부족한 대통령에서 자신감 넘치는 대통령, 리더십 위기에서 위기 관리의 리더로 부상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임기를 끝까지 전쟁으로 몰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새로운 의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때 소위 낙인이 찍힌 국가들에 대해 전면적으로 나설 것인지, 도덕성에 근거한 새로운 의제를 만들 것인지는 우리의 안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약한 갈대는 잘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한 나무는 잘 휘어지지 않지만, 큰바람에는 부러진다. 강한 나무가 바람을 이기려면 주변에 많은 나무들을 가까이하는 것이 최선이다. 홀로 모든 것을 이기려고 하는 독선의 시기를 가장 우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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