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백년을 통해서 제일가는 천재는 김시습이다.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수양대군이 단종을 제치고 세조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혐오를 느껴 평생을 은둔으로 지낸 인물이다. 그의 이름 時習은 물론 논어의 ‘學而時習’에서 따온 것이다. 배우고 또 그 배운 바를 기회 있을 때 마다 열심히 몸에 익힌다는 이 구절은 줄여서 ‘學習’이라고 하는 것인데 현대 교육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배우고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은 모름지기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써 배운 것이 토론의 대상이 되고 명상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몰래 어두운 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숭상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개고기 식육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온 식구가 모인 식탁에서 다 함께 즐거이 먹는 음식인가? 허다한 요리학원이 있지만 개고기 요리학원이 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다.
마약이며 도둑질, 부정거래, 부패, Sex 등도 다 그러하여 어두운 곳에서 남몰래 배우고 행하는 것들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이 다음세대나 더 먼 훗날에 배움의 공개적인 대상이 될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 학이시습된 것이 아닌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은 개판이고 문란하고 부도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학이시습은 참으로 대단한 선언문이다. 그러나 이 學習이라는 단어가 이북공산당에서 너무 상용적(prevail)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人民學習이라고 함) 남한에서는 슬그머니 그 모습을 감추고 마는 용어가 되어 버렸다.
孔子는 자기 자신을 일러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스스로 고백하기를 그는 十代에 이미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學問이라는 것을 깨달았다.(十有五 好學) 자기가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초지일관하게 좋아하는 것을 일생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극소수의 뛰어난 인물이나 아니면 운이 좋은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孔子는 자기가 좋아하는 學問을 열심히 하여 三十에 立이라, 30代에는 자기다운 입장이 섰다는 것이다. 배우고 묻는 일 學問을 더 밀고 나가 40代에는 불혹(不惑)이 되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학문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어 50代에는 하늘의 뜻을 드디어 알게 됐다는 것이다.
온 중국 땅을 떠돌면서 쉼 없이 묻고 배운 그 분을 연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그런데 우리의 김시습은 왜 결국 세상을 등지고 불문에 귀의하여 매월당이 되고 만 것일까? 김시습같은 천재가 만약 논어를 비롯한 四書에 주석을 붙였다면 저 찬란한 朱子만 못했으랴.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깝고, 아깝다. 우리 한민족은 한가지를 깊이파고 들어가는 것에 능하지 못한 백성인지도 모른다. 저 조선 왕조 5000년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비들이 우글거렸지만 끝까지 공부에 몰두한 유학자는 드물고 전부다 음풍영월… 자연이나 읊조리고 달이나 영탄하는 詩書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요사이도 왠 시인과 시집을 그리도 흔해 빠졌는지.
아마도 한국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는 드물 것이다. 종교의 아우성이 판을 치는 한민족의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종교학자는 드물다. 그 결과 경서의 해석이 너무 Cheap하게 되어 Gospel은 자취를 감추고 propaganda(선전)만 무성한 꼴이 되어 가는 것이다. 교양의 자리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신앙이라는 것이 자리하여 교양은 개밥신세가 되고 믿음의 논리만이 판을 치게 되었다. 예의와 염치는 불예와 몰염치로 바뀌면서 율법과 계율만 잘 지치면 그만인 풍조가 되어 가는 것이다. 살아가기가 참으로 암팡진 세상이다. 같이 미치지 않으면 정 줄만한 구석이 자꾸 좁아드는 느낌이다.
나는 고등학교때 논어를 배운 이래로 종교성이 없는 그 가르침이 마음에 들었고 교양과 예의와 염치를 숭상하는 그 맛을 즐거워했다. 이것을 통해서 자기 안에 있는 욕망(人欲)을 공개적인 차원에서 억제함으로써 예의 있는 인간이 되다는 것… 孔子 가르침의 핵심이 아닌가.
항상 책상머리에 논어를 놓아두고 일용하는 양식으로 삼으며 책을 open할 때마다 제일 먼저 눈에 띠는 學而時習. 그래서 김시습을 늘 생각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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