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와 같이 보낸 시간은 태어나서 13년 정도이다. 정확하게 13년 5개월하고 22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아버지의 사랑을 그 짧은 기간에 모두 주시고 가셨다.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에, 나는 양 부모가 살아 계시는 친구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문학을 공부하셨고 잡지사 편집국장으로도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내게 글과 말을 사랑하는 법을 일찍이 가르쳐주셨다. 항암 치료를 받고 일을 못하셔서 돈이 없을 때에도 동대문 시장 입구의 손수레 위에 놓인 책들의 저자들에 관해 이 얘기 저 얘기를 들려주시며, 김소월 시인의 시집을 어린 나의 손에 쥐어주셨다. 가구라고 할만 한 가구 하나도 없이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할 때에도 동네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한 집은 우리 집이었다.
지난 여름 문학 캠프에서 이호철 소설가님께서 "책 읽을 나이에 책 읽은 독서의 분량에 따라 글 쓰는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며 나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책 읽을 나이에 내게 책을 읽히시려고 노력하신 우리 아버지의 생각이 간절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며 유산 대신 내가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필요한 확신을 남겨 주셨다. 나를 언제나 사랑하셨고 저 먼 곳에서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 항상 명랑하고 밝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내가 어떠한 선택을 내리던 그 선택이 내 인생에 행복을 갖다 준다면 그 선택이 아버지께서도 원하는 선택이라는 확신.
몇 년 전의 일이다. 국제 회의 통역으로 일본에 갔을 때 꾼 꿈이다. 꿈속에서도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다름아닌 아버지셨다. 아버지도 서울에서 출장을 오셨다며 내게 일본에는 언제 도착했느냐고 물으시면서 무척 반가와 하셨다. 나는 미국에서 몇 시간 전에 도착해 저녁을 먹자마자 피곤해서 바로 잠에 빠진 상태였다. 아버지는 "오늘은 늦었고 네가 너무 피곤하니 내일 만나자"며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다음 날 나는 약속 장소로 나가 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러다가 퍼뜩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순간에 꿈에서 깨어난 기억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고 마냥 기쁘기만 했던 평생 잊혀지지 않을 꿈을 꾸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내 마음속의 아버지의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만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 아동 및 성인의 수는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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