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교 <소아정신과 의사, 리치몬드, VA>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민망하기만 하다.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항상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기 일에 바빠서 아들이 아버지를 꼭 필요로 할 때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아들 몰래 마음 아파하며 이 일을 잊지 못한다.
오늘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방학이 끝나서 돌아가기 전에 아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간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지 않아도 저 큰 바다를 바라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행여 읽어주지 않을까 해서다. 버지니아 비치로 가는 길은 붐비지는 않지만, 눈보라가 시작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차창 밖에는 흰눈이 덮히기 시작해서 하얀 세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꺼낼 말이 없다. 아들이 멋쩍어서 몇마디 이례적으로 물어온다. 아버지에게는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서 아들이 묻는 말을 흘리고 만다. 그래도 무언지 아버지의 마음은 따뜻해옴을 느낀다. 생전, 아들과 둘이서만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변화다.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있는지 말을 줄인다. 차창 밖은 이제 거의 제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눈이 쌓여가고 차안의 아버지와 아들도 아주 좁은 공간에서 온통 마음이 환히 열리는 것을 느낀다.
훠트 몬로가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바닷가 근처에 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익은 망루와 등대가 어렴풋이 보였고, 바다는 검은 돌처럼 시커멓게 길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이제 바다를 더 보려고 해변가에 가려는 계획도 바꿔져야 한다. 혹 근사한 큰 유리창이 나 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따뜻한 스프와 감자조림, 스테이크는 어떨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묻는다. 아들은 아무래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도시를 잘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이 도시에 있는 맥아더 기념관을 생각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어도 될 듯싶어서였다.
우리는 전형적인 관공서와 같은 맥아더 기념관에 들어섰다. 맥아더 장군 부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돔 아래층을 지나자 각층마다 년대별로 전시된 장군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다. 장군의 아버지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헌신으로 일찍이 미국 최고 영예 훈장을 탔으며 필리핀 주둔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맥아더가 위대한 군인으로 성장하도록 큰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어머니는 맥아더가 확실히 성공할 때까지 끊임없이 뒷받침을 했다. 처음 육군사관학교 입시에 낭패하여 일년을 재수하고 다시 입시를 치를 때나 입학 후 4년을 어머니는 교내 방문소에 기거하며 아들의 학업과 내신을 독려했다고 한다. 7개의 은성 무공훈장을 타고도 장군 진급이 늦어지자 육군에 항의편지를 낸 것도 어머니의 극진한 충정을 말해준다. 맥아더 장군 일생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는 더욱 더 아들에게 빚진 자처럼 느껴졌지만 아버지, 스스로도 한 위대한 영웅의 끈질긴 노력과 정의 구현을 생각하며 숙연해지는 것이다.
특히 그가 학생 생도대장이었을 때, 저학년생 길들이기 행사도중 한 생도가 사망함으로써 맥아더는 워싱턴 청문회에 불려가서 당당히 이의 시정을 약속하고 일체의 저학생 길들이기를 없앰으로 육군사관학교의 명예를 회복시켰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기념관을 참관한 후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하지만 군인이 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아들에게는 적어도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감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버지는 멋진 음식점을 찾다가 사람들이 북적되는 이태리 식당에서 겨우 국수류의 음식을 먹으며, 뜻있는 하루를 음미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지 못한 말을 생각해 낼 것이다. 맥아더장군의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눈오는 날 아버지가 우연히 맥아더 장군을 빌렸던 추억을 간직할 것이다. 아니 다 잊어버려도 눈이 심히 내리는 겨울에 어딘가 멀리 갔다가, 아버지를 대신해 힘겨운 운전을 하여 간신히 집에 돌아왔던 기억을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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