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은 원자폭탄 제조능력을 갖고 있었나.
나치 원자폭탄 개발계획의 책임자였던 베르너 하이센베르크는 1941년 코펜하겐에서 한 과학자와 만나 이 계획의 존재를 밝혔다. 하이센베르크와 만났던 이 과학자는 나중에 연합국들의 원자폭탄 제조 프로그램인 이른바 맨해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 런던의 더 타임스가 관련 비밀서류들을 인용, 지난 주말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역사학자들의 지금까지의 주장 및 현재 상연중인 수작 연극 ‘코펜하겐’의 내용과는 다르게 하이센베르크는 히틀러를 위해 원자폭탄을 만든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이 보도한 내용 가운데 새로운 사실은 하이센베르크가 제 2차 세계대전 도중 비밀리에 만났던 과학자 닐스 보어가 쓴 편지에 기초하고 있다. 더 타임스는 코펜하겐에 있는 닐스 보어 고문서 보관소 책임자 핀 아서루드 박사가 이 우송되지 않은 편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서루드 박사는 보어 가족 이외에 이 편지를 읽은 두 명 가운데 하나로 당시 두 과학자간의 만남에서 무슨 말이 오갖는지를 묘사하고 있는 이 편지의 내용은 아직도 역사의 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보어는 1962년 사망했고 하이센베르크는 1976년 세상을 떠났다. 노벨상에 빛나는 이들은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편지의 핵심은 하이센베르크가 보어에게 ‘2차 세계대전은 원자폭탄으로 승리할 수 있으며 나는 이 폭탄제조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서루드 박사의 말이다.
하버드 대 물리학 및 과학역사 명예교수 제럴드 홀튼 박사는 보어 가족을 제외하고 이 편지를 직접 읽은 유일한 생존자이지만 보어 가족과의 약속 때문에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서루드 박사의 말 가운데 일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홀튼 박사는 말했다.
지난 수십 년 간 역사학자들과 과학자들은 하이센베르크가 왜 원자폭탄을 제조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을까를 놓고 논쟁을 벌여 왔다.
지난 1993년 ‘하이센베르크의 전쟁: 독일 원자폭탄의 비밀 역사’라는 저서를 쓴 저널리스트 토머스 파워스는 하이센베르크가 당시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이센베르크는 코펜하겐에서 보어와 만나 타협을 했다. 즉 연합국의 과학자들이 원자폭탄 개발을 포기하면 나치 독일도 개발 계획을 철회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절찬리에 상연중인 ‘코펜하겐’은 바로 파워스의 책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하이센베르크의 사보타지설은 상당수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맨해턴 프로젝트를 역사적으로 기술한 ‘원자폭탄 제조’(1986)의 작가 데이빗 로즈는 하이센베르크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은 것이 아니라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에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이센베르크는 협상을 하려고 보어와 만난 것이 아니다. 그는 보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만났다. 즉 하이센베르크는 일종의 간첩활동을 한 것이다"
로즈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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