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년 한 해도 어느새 마감이 며칠 남지 않고 또 하나의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온다. 테러-전쟁-살육으로 이어진 역동의 역사 속에서도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어김없이 우리 앞에 찾아왔다. 이 때가 되면 누구나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까.
오늘날 인류사회는 문명의 충돌이라고 까지 표현되는 종교간 대립, 인간간의 분쟁으로 약육강식이나 다름없는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숨가쁘게 돌아간다. 이러한 세태 속에 우리 는 어느 때 보다도 더 큰 불안과 공포 속에 위기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특히 정보와 경제가 우선이며 대규모 조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존재란 갈수록 미미하고 사소하게만 보이며 무력감만 느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개인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은 갈수록 더 강조되고 있다. 9.11테러만 보더라도 ‘순교’라는 명분 하에 원한과 증오의 결단을 내린 개인의 행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납치 항공기 속에서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싸움으로써 테러의 목표공격을 좌절시킨 것이 용감한 시민의 희생에 의한 것이었음을 볼 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념과 행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특히 지금처럼 예측 불허의 위기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을 자기자신 안에서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자기 성찰’의 방식이 기도이든, 묵상이든, 참선이든 자신을 참되게 되돌아보고 자신을 발견하는 길이라면 방법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이는 감방이라는 독특한 공간 속에서 자기성찰을 통한 ‘생명’의 발견에서 시작해서 생명사상으로의 체계화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한 문인의 체험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문인은 자신이 투옥된 후 언제 석방될 지 모르는, 아니 언제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 감방의 천장이 내려오고 벽면이 다가서는 환각으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때, 봄바람에 날아든 하나의 풀 씨앗이 감방 벽 틈에서 싹을 틔우는 것을 우연히 본 순간, 온 세상이 녹색 생명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체험을 했다 한다. 그후 자신을 가두고 죽음의 위협을 가하던 절대권력자가 세상을 떠났음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에 절로 떠오른 첫 마디는 ‘안녕히 가시오, 나도 곧 뒤따라 갈 것입니다’ 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원한도 증오도 생명의 힘 앞에서는 어둠이 빛 앞에 사라지듯 없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두고 한 시인은 ‘벽에 갇힌 문인의 고통스런 영혼이 그 극한에서 어느 날 날아온 풀 씨 한 톨에서부터 ‘위대한 틈’을 보고 우주를 향해 커튼을 열어 젖히고 나아가는 순간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9.11테러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테러리스트들의 무자비한 자폭행위에 대해 엄중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갈수록 인명경시, 모험주의로 치닫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생명의 존엄성과 인류평화가 여지없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도 대미를 피로 물들인 이 용서의 고귀한 빛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촉매제가 될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얼사건은 인간의 갈등과 증오, 분쟁과 죽임의 어둠을 뚫고 언젠가는 상생(相生)과 화해, 이해와 룩진 삶의 부서짐을 진하게 느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투철한 자기 성찰을 통해 얻은 인간 본 이 해 말에 한 문인의 녹색 생명 빛 체험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꼭 테러와 허망한연의 발견, 거기에서 비롯된 고귀한 생명의 힘 때문이 아닐까.
테러참상의 현장에도, 공습으로 파괴된 아프카니스탄의 어느 산악 지역의 동굴에도 녹색의 찬란한 생명 빛이 가득 차게 되는 그 날은 언제인가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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