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 만화가 월트 디즈니가 5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월트 디즈니사(社)가 소유한 ABC 방송은 지난 9월16일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했고 디즈니가 사망할 때까지 구상에 몰두했던 플로리다주(州) 디즈니월드테마공원에서는 연말까지 ‘환상의 100년’이라는 주제로 기념행사가 열린다.
미주리주(州)에서 성장한 디즈니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신의 나이까지속여가면서 앰뷸런스 운전병을 자원해 프랑스 전장을 누비고 다닐 정도로 모험심이강했다.
전쟁이 끝나자 디즈니는 캔자스시티로 돌아와 상업예술계에 발을 디뎌놓았다.
잇따른 사업실패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디즈니는 1923년 캘리포니아주(州) 할리우드로 자리를 옮겨 형제인 로이와 함께 주차장을 개조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1928년 미키 마우스가 디즈니의 손을 거쳐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을 뵌후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도널드 덕, 구피, 플루토 등이 차례로 스타반열에 올라 디즈니 시대를 이끌었다.
디즈니는 1937년 첫 장편만화영화인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만들었고 1940년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접목한 `판타지아’에 이어 1950년 ‘보물섬’으로 세계 어린이들을 감동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디즈니의 스튜디오는 한때 육군 사무실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1942년에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밤비’를 내놓았다.
디즈니는 모두 영화 600여편을 제작했고 권위있는 오스카상을 모두 29차례나 휩쓸었다.
전후에 디즈니는 오락산업에 눈을 돌려 1955년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공원을 개장했으나 1971년 플로리다주(州)에 디즈니월드 오픈을 보지 못한 채 1966년 12월 5일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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