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손 신(뉴욕한인봉사센터 부총장)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던 90년대 초, 많은 사람들은 이데올로기 시대의 청산과 더불어 경제전쟁시대가 새롭게 도래하고 있음을 예견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주도의 세계 구조가 종결되고 미국, 일본, 유럽의 세 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역주의의 탄생을 의미하며, 이는 역사적 전통과 경험을 공유하고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이 모여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세계경제화 블록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세기 말의 급격한 세계질서의 변화에 대하여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통해 미래는 정치체제나 경제력을 기초로 한 국민국가간의 갈등이 아니라, 7개 내지 8개로 나뉘어지는 독립적인 문명권들을 나누는 문화적 단충선(Cultural Fault Line)을 따라 나타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가설은 최근 부시대통령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War Against Terrorism)이 이슬람 문명권과 기독교 문명권 간의 대규모 충돌로 그 본질이 변질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근간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상이한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독자적 문명권들의 형성과 충돌위기가 비단 국제질서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가 살고있는 미국이 안고있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케네디대통령이 발의하고, 존슨대통령에 의해 통과된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미국은 수많은 아시안 이민자들의 꿈과 약속의 땅으로 자리잡아 왔다. 또한, 중동, 남미, 커리비안, 동유럽 등으로부터 유입된 다수의 이민자들로 인해 미국의 문화적 풍광은 급격하고 심오한 변화에 직면하였으며 90년대 들어 그 변화들이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이슬람 커뮤니티의 사원들이나 불교사찰들 이외에 피츠버그 교외의 힌두교 사찰, 시카고지역 레몬트의 라마교사찰, 캘리포니아 말리부 언덕의 바라지(Balaji) 사찰 등 수많은 대규모의 종교시설들이 1990년대에 건설되었으며, 이는 이민자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종교단체들은 전통적인 사찰이나 사원의 운영방식이 아닌 미국식 비영리단체 운영시스템을 도입하여 자원봉사자 시스템 활용, 세금 감면을 위한 멤버쉽 제도 도입, 각종 기금모금 행사등 일반인들의 삶에 더욱 가까운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몇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엘머스트지역 저스티스 애비뉴 선상의 한 아파트 같은층에 11개의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난 10여년간 소위 ‘문화 전쟁’(Cultural Wars)’의 형태로 이어져 온 국가적 정체성의 위기와 현존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대한 논쟁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복합적 정체성의 근본적 화두가 되어왔다. 우리는 흔히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We, the American”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근래에 들어 미국이 이야기하는 우리(we)의 개념이 흔히 세계의 여타지역에서 사용되는 좁은 의미의 민족적, 종교적 용어가 아닌 미국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을 포함하는 포괄적이면서 다원주의적 형태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은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다.
미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인간적이고, 반지성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을 테러로부터 지키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문화적, 종교적 우월주의나 소수민족 차별정책의 수단으로 그 본질이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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