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연쇄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운명이 이제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됐다. 그를 비호해왔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와해 단계로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완전 점령하기도 전에 라덴의 탈출로를 봉쇄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입출항하는 배들을 철저히 검문검색하고 있다. 미국 전투기들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동굴들에 폭탄을 계속 퍼붓고 있으며 특수부대원들은 아프간 내부에서 라덴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면 미국은 보다 수월하게 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미국은 산채로 잡기 보다는 ‘교전 중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사살’ 쪽으로 라덴의 운명을 결정짓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러나 라덴의 생명을 앗는다 해서 문제가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물론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은 라덴의 추종자나 알 카에다로부터 계속적인 테러 위협을 받을 것이다. 이미 이슬람 세계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라덴이 사살당할 경우 그에 대한 숭배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이슬람의 본고장인 중동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도 라덴은 이미 경배의 대상이 됐다. 라덴의 얼굴을 인쇄한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가 하면 태국 남부 5개 지역에서는 남녀 신생아들에게 ‘오사마’란 이름을 붙이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오사마는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이므로 성별(性別)에 관계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라덴이 만약 죽게될 경우 그는 지금까지 대표적 혁명가로 꼽혀왔던 체 게바라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란 본명보다 체 게바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사람 살리는 학문’ 의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친구와 함께 남미 여행길에 나섰다 사회주의 혁명가로 변신했다.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인디오, 메스티조 등의 삶을 목격하고 의사의 길 대신 게릴라 투쟁을 선택한 것이다. 55년 7월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으며 59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혁명군으로 입성했다.
게바라는 혁명 후 쿠바 국립은행 총재를 맡는 등 경제 개혁에 착수했다. 비록 외국인이지만 혁명 성공에 혁혁한 공을 세워 ‘체(동지란 의미)’란 애칭까지 얻었다. 그러나 권력과 안락한 삶이 보장된 자리를 버리고 또다른 혁명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65년 내전 중인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다 생포된 뒤 사살당했다. 당시 볼리비아 군부는 체가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67년 10월 볼리비아의 한 학교에서 총살시켰다는 것이 정설이다.
게바라와 라덴은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게바라가 돈과 명예가 보장된 의사의 길은 물론 국립은행 총재직까지 버린 것처럼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거부로서의 선택된 삶을 외면했다. 라덴은 신장염을 앓고 있다. 다리도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서야 걸을 수 있다. 게바라는 천식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 한번 천식 발작이 일어나면 감당을 못해 동료들에게 엎혀 다니기도 했다. 또한 둘은 지독한 반미주의자다. 제3세계 국가들의 불행은 ‘미 제국주의’ 탓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같은 미국을 응징하는 전쟁에 자신을 던진다는 ‘편향된 신념’을 갖고 있다.
라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두고 미국은 고민과 딜레마에 빠져 있는 듯하다. 라덴을 생포, 법정에 세울 경우 그를 되돌려 받기 위한 수많은 테러와 인질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다. 사살한다면 라덴은 제2의 게바라, 어떤 의미에서 게바라 이상의 숭배 대상이 되어 미국과 우방국들을 두고 두고 괴롭힐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라덴의 신병 처리를 하루빨리 끝을 맺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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