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뉴욕 클래식 음악계에 한인들이 단연 주목을 받았다.
9년만에 열린 ‘2001 뉴욕필하모닉 영 아티스트 콩쿨’의 최종 우승자 3명이 모조리 한인 아이들로 이날 이들은 쿠르트 마주르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와 협연을 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화려하고도 앙증맞은 콘서트용 드레스를 걸쳐 입은 소녀와 턱시도를 받쳐입거나 스웨터 차림의 소년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링컨센터 에브리 피셔홀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여느 연주회와 달리 사회자가 있어 그녀는 인사말로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는 한국말을 하면서 수상자 모두 한인임을 밝혔고 세 어린이의 연주 후 잠깐씩 인터뷰를 하며 “한국인을 사랑합니다”고 한국말로 외치기도 해 객석에 앉은 아주 적은 숫자의 한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자랑스럽게도 했다.
3명 모두 대단한 연주실력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이날 두 번 째 등장한 11세 아이의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환호했고 그 아이는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무대위로 나와 피아노 앞에 앉더니 앵콜 곡을 필하모니 협연 없이 혼자서 치기 시작했다.
그 솜씨가 얼마나 기가 막힌 지 무대에 앉은 연주자들도 고개를 빼어 쳐다보고 무대 뒤에 있던 스텝들이 입구에 나와 서서 볼 정도였다.
무심코 ‘아, 앵콜 연주도 하는구나’ 하고 공연이 끝난 후 3층 리셉션 장으로 갔더니 이 화제의 꼬마가 한바탕 울고 난 뒤 잔뜩 풀이 죽은 얼굴이다.
필하모닉 음악감독 쿠르트 마주르가 진노 한 것이다.
뉴욕 필이 재능 있는 연주가를 키우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이 콩쿨은 개인 연주회가 아니므로 혼자서 튀는 돌출행동은 못하게 되어 있는 것, 또 본인이 아무리 치고 싶은 곡이라도 협연 자리에서 혼자서 자신의 재능을 자랑했다는 것, 이것은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아이의 수상은 취소될 지경에 이르러 한껏 자랑스러웠던 잔치가 뒤에서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찬물을 확 끼얹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렇다. 예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해도 평생 가야 할 그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좌절에 빠지기도 하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남들에게 재능을 뽐내기 위해, 남한테 칭찬 받기 위해서도 가는 길이 아닌 것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 연습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인성 교육을 소홀하게 한다면 그것은 가짜 예술이다. 가장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연주자가 먼저 인생의 깊이를 알아야 음악을 듣는 청중들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감동을 줄 수 있다.
매일 대여섯 시간 이상을 연습하여 연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예술에 대한 태도가 교만하여 겸손치 못하면 그 재능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로 전락된다.
부모의 태도도 그렇다.
한국에 있는 학부모든 뉴욕에 있는 학부모든 아이에게 피아노나 바이올린, 클라리넷 레슨을 시키면서 기술자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긴 인생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기 위한 정서함양이 아닌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레슨을 시키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날도 금발, 흑발의 수많은 타인종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연주를 듣고 박수를 치며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데 한인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의 한인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피아노나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데 토요일 오후 그 아이들은 다 어디 있었는지?
천만다행으로 연주회 소동은 부모의 백배사죄 후 수상권 취소 운운이 없었던 일이 되었지만 아이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게 격려하고 헌신하는 부모들은 야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전에 자아 수련부터 쌓게 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유럽 지역의 유명 콩쿨마다 한국인이 수상권을 휩쓸어 급기야 한국인은 참가할 수 없다는 대회 규정이 내려진 일이 문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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