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 방송사 ‘드라마 대표선수’들이 유니폼을 한복으로 맞춰 입었다.
98년 KBS 1TV <용의 눈물>과 지난해 MBC TV <허준>을 통해 사극의 저력은 입증됐지만 올해처럼 일주일 내내 TV 화면을 사극으로 도배한 것은 유래가 없었다. MBC TV <홍국영>, SBS TV <여인천하>(월~화)를 비롯해 KBS 2TV <명성황후>(수~목), KBS 1TV <태조왕건>(토~일) 등 사극이 없는 날은 금요일 뿐이다.
사극이 이처럼 방송사의 인기 품목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각사 제작 관계자들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사회적 배경을 놓고 보면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슈퍼맨 나와라.몇몇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어려울 때 영웅을 찾는 약자의 심정을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기했다. 사는 것이 힘들고 고달플 때 누구나 영웅의 출현을 고대한다. 고난을 극복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주변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을 내세운 사극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SBS TV <여인천하>의 정난정(강수연)의 경우, 신분 한계를 극복하고 정사를 좌우하는 자리에 올라 야망을 성취해 나간다. 그녀의 행적이 권모술수에 불과하다는 부정론도 있지만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도전적인 인물상을 보여준다는 긍정적인 관점도 만만찮다.
이렇게 볼 때 KBS 2TV <명성황후>는 내용전개가 본격화 할수록 주인공 명성황후(이미연)가 시청자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박현순(33·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씨는 "역사적으로 식민사회를 거친 우리민족은 시대적 영웅을 갈망해 왔다"며 "경제적인 외세 침투에 대항하는 최근 상황을 볼 때 영웅 명성황후는 반드시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옛날이 좋았지.SBS TV <여인천하>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는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겸 규장각 관장은 먼저 "사극을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단순한 극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록에 의한 사실 검증보다는 ‘재미’가 우선시 되는 드라마를 반드시 역사적인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사극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 문명적 비평이 가능하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외국 문명이 과도하게 일상 속으로 파고들게 된 현실에서 전통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느낀 시청자들이 사극을 찾게 되고 정신적 위안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갈고 닦아라, 그러면 볼 것이다.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씨는 "기존 사료만으로는 대본을 쓰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일 방송된 ‘궁예의 죽음’은 사서(史書)에 단 한 줄로 묘사돼 있을 뿐이다.
한 문장의 자료를 바탕으로 100분을 넘는 내용을 꾸며낸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시청자는 이렇게 가공해 낸 극적 구성요소에 의해 손에 땀을 쥐기도 하고, 탄식을 짓기도 한다.
여기에 ‘옛날 얘기’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현대적 요소들도 한 몫하고 있다.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최신가요와 등장 인물들이 구사하는 현대 구어체를 통해 시청자들은 얘기가 펼쳐지는 시대에 대한 시간적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극에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다.
오태수기자 ohyes@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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