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 밀레니엄 기행 "라틴 아메리카 가다"를 마치며
▶ 손호철(서강대 교수, 현 UCLA 교환교수)
느긋한 코리아타임 실종우리는 시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회의 일부이고 사회적인 것입니다. 농경사회에서의 시간과 현대사회에서의 시간이 전혀 다르게 조직화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는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해 우리를 끊임없는 ‘속도의 경쟁’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생활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단기간에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사회는 유별납니다. 느긋한 ‘코리아 타임의 나라’가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처음 만나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아, 빨리 빨리"라고 답하는 ‘빨리 빨리의 나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라틴아메리카는 ‘반면교사’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교수라는 직업 덕분에 안식년을 얻어 이 곳에서 자기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시작한 멕시코와 쿠바여행은 "책이야 한국에서도 볼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라틴 아메리카나 돌아보자"는 본격적인 라틴 아메리카 여행으로 발전해 근 두 달에 걸쳐 미대륙의 최남단 땅 끝으로부터 태평양의 고도 중의 고도와 아마존 정글로까지 발길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사실 70년대 대학을 다녔고 특히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투옥의 경험 등을 가져야 했던 저에게 군사독재와 경제적 저개발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했던 라틴 아메리카는 우리 문제를 비춰볼 수 있는 ‘선생’이었고 이는 이후의 유학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점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저를 포함한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이론적 고향’이였습니다. 이처럼 책으로만 보아온 라틴 아메리카를 직접 돌아다 본 것은 너무 값진 경험이었고 여행을 통한 직접 체험, 그리고 여행을 위해 새로 읽은 책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한 여행가가 지적했듯이 여행은 물론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풍물을 자신과 비교해 보고 몰랐던 자신의 여러 면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신과의 대화 내지 자신의 재발견입니다.
인간중심의 문명 전환 계기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당했을 때 개인적으로 단순히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회복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를 그간의 경제일변도의 문명을 인간중심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 모는 정리해고 대신에 노동시간단축, 필요하다면 이에 상응하는 임금삭감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는 한편 늘어간 여가시간을 자기 발전에 사용하여 과거보다 가난하지만 삶의 질에서 풍요해지도록 문명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포가정의 세계 오지여행이번 여행을 통해 재확인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전환의 필요성입니다. 브라질 편에서 소개한 바 있듯이 "그동안 돈 많이 버셨겠다"는 질문에 "돈은 많이 못 벌었어도 궁색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원 없이 즐기며 살았다"는 한 교포어른의 말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삶의 지혜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변의 멕시코계를 보면, 있으면 쓰고 놀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하는 식의 ‘하루살이주의’와 게으름을 경멸합니다만 오히려 이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 얼마전 한국일보에 소개된 바 있는 한 교포가정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즉 스몰 비즈니스를 경영하는 이 가족은 일년에 한달 정도는 휴가를 내 세계의 오지를 여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덜 풍요하지만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사는 지혜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경제적 여유란 상대적인 것이고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덜 여유로울 각오만 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가난해도 즐기며 사는 것, 라틴 아메리카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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