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
▶ 익스체인지사의 강창술 박사
실리콘밸리에서 40여년을 사는 동안 7개의 기업을 창업, 지역 사회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익스체인지(eXchange)사의 강창술 사장(74, 몬테세레노 거주).
강 사장은 실리콘밸리의 감투·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연쇄창업 기업사(Serial Entrepreneur)의 전형적 사례로 지난 21일 샌호제 머큐리지에도 크게 보도됐다.
강 사장이 운영하는 익스체인지사는 B2B(Business to Business) 소프트웨어·솔루션 제공업체.
최근 1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한데 이어 200만달러의 추가자금이 도입될 것으로 예정돼 있어 업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지속적인 창업을 장려하고 실패도 성공처럼 훈장으로 평가받는 것이 실리콘밸리 풍토 아닙니까."
"성공 스토리가 이어지고 나 같은 엔지니어들이 우대 받으니까 자연스럽게 사업을 계속하게 됐다"고 실리콘밸리의 매력을 한껏 털어놓는다.
스탠포드대 재료공학 박사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와 한국 양국에서 한인 전자산업 1세대로 손꼽히는 그는 1970년 구미공단에서 한미합작 반도체 관련 회사인 ‘구미배러다인’(KumiVaradyne)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로 한국에서 첫 사업을 개시하게 됐다"고 설명하는 강 사장은 1970년대 말에는 삼성에서 반도체 산업을 이끌기도 했다.
강 사장이 세운 기업은 ‘구미배러다인’ 이후 덱셀(Dexel·1975년), 페트라 어소시에이츠(Petra Associates·1981), 안셀 커뮤니케이션스(Ansel Communications·1989), 카데크(Kadek·1998)에 이어 지난해 창업한 익스체인지까지 총 7개, 이중 마이크로웨이브 트랜지스터, 증폭기 등을 제조한 덱셀은 일본 재벌인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모 회장의 투자지원을 받았고 이 회사는 나중에 2,500만달러에 성공적으로 매각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프라 시설이 부족해 한국에 세운 ‘구미배러다인’은 1년여만에 문을 닫았다"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항상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의미를 같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함경북도 어대진 출신인 강 사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3년 도미, 버지니아대와 코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스탠포드대로 자리를 옮긴 뒤 실리콘밸리에서 40년간 둥지를 틀었다.
반도체 재료인 비소화 갈륨(Callium Arsenide)에 관한 논문을 내놓은 덕에 어떤 회사에서는 면접 때 공항에 헬리콥터를 대기시킬 정도로 한때는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는 강창술 사장.
첫 직장인 휴렛 팩커드사에서 근무했을 때부터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창업을 시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단다.
지난해 뇌일혈을 경험한 뒤로는 공부시간의 상당부분을 역사와 음악에도 쏟고 있다.
젊은 기업인들도 창업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어떤 성공한 기업인들은 일찌감치 은퇴해 편하게 살려고 하는 풍조 속에서도 70대 중반에 벤처 기업을 창업하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강 사장이야말로 은근과 끈기를 갖고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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