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해군 최초 여성 심해잠수병 다나 토비아스
최근 ‘여성 잠수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른 다나 토비아스(48)는 미 해군 최초의 여성 심해 잠수부. 1970년대 해군에 최초이자 하나밖에 없는 여성 잠수병으로서 경험한 수 없는 기억 중에서도 ‘마크 V’(Mark V)보다 더 생생한 것도 없을 것이다.
해군에서 더는 사용되지 않는 마크 V는 고무를 입힌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잠수복으로 구리를 짜 넣은 헬멧과 가슴판, 단일 사이즈 납 장화와 세트를 이룬다. 200파운드 무게의 마크 V는 체중 135파운드의 토비아스에게 육지에서는 견딜 수 없는 물건이지만 일단 물 속에 들어가면 100피트가 넘는 수심에서도 토비아스가 수압을 견뎌내게 했다.
조용한 목소리와 침착한 태도의 자그마한 여성 토비아스는 "마크 V는 5피트5인치인 내 키에는 너무 컸다. 장화도 한 짝이 17파운드나 했으며 내 발은 신발 속 공간의 반 정도를 차지할 뿐이었다. 물에서 나오면 납 무게 때문에 사다리를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발에 매달린 납덩어리 장화를 들어올리려고 무진 애를 썼고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물 속에서 움직이는데는 거의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바다에서는 마크 V 안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남녀를 막론, 어느 다이버에게든 힘들 이 옷은 토비아스가 1975년에 해군 최초의 여성 심해 다이버가 되기 전까지 어떤 여성도 이 옷을 입을 권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 토비아스는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해봤을 때부터 물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 정열은 결국 그녀를 군 최고의 엘리트 집단중 하나에 도전하도록 이끌었다.
남가주에서 성장한 토비아스는 해군에 지원하면서 모병관에게 다이빙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 질문했지만 "어림없다. 여자는 갈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기본 훈련을 마친 후 잠수병이 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을 캐묻기 시작했더니 아주 긴 리스트가 주어졌고 그녀는 하나씩 하나씩 리스트에 적힌 일들을 다 해나갔다. 그리고 여자는 다이빙 학교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사람들을 무시한 채 해군 2급 다이빙 학교에 지원, 결국 1975년 1월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이틀 전에 입학허가 통지를 받았다. 21세 때였다.
버지니아주 노폭에 위치한 ‘리틀 크리크 해군기지’에서 입학생의 반은 대개 그만두는 10주간의 고된 훈련 동안 토비아스는 탐색과 구조, 해난구원, 물리학과 의학등, 심해 다이빙의 모든 단계를 배웠다. 그 학교의 특징은 아무 때나 그만 두거나 쫓겨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만두겠어’라는 말을 입밖에 내기만 해도 끝장이었다.
다이빙 학교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자기들 가운에 뛰어들어온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저항으로 정신적으로도 수난이었다. 토비아스는 "어떤 이들은 내가 어떻게 금속 가슴판을 입을 수 있는지, 마치 그게 내 가슴에 무슨 문제라도 되는 듯 호기심을 가졌고 ‘여자’가 할 수 있다면 다이빙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위협을 느낀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에게 배움의 경험이었어요. 처음에 가장 나를 거부했던 사람들의 일부는 가장 친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됐어요. 나 자신의 성장을 지켜봤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최선을 발휘하게 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시간이 갈수록 감동적이에요."
1975년 14명과 함께 졸업한 그녀는 "그런 경험을 같이 한 사람들과는 매우 가까워지죠. 지금은 다들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언제나 있다"며 자신의 손을 가슴에 얹었다. "그들도 나를 잊지 않을 것으로 확신해요."
졸업 후 토비아스는 코네티컷주 그로톤 소재 해군 잠수함 기지로 배치돼 수병들에게 125피트 높이의 금속 실린더를 사용, 거대한 물살에 잠긴 잠수함에서 탈출하는 법을 가르쳤다.
1977년부터 그로톤에서 토비아스와 함께 일한 퇴역 해군 매스터 다이버 스티븐 레크너는 "토비아스는 모든 면에서 두배 이상 뛰어남을 증명해야만했는데 실제 그러했다. 그녀는 엄청난 용기를 가진 훌륭한 인물"이라고 토비아스를 평가했다. 탈출 훈련탱크에서 가르친 최초의 여성인 토비아스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후에는 모두 그녀를 우러러보며 존경했다.
해군 잠수병으로서 토비아스는 여러 항구에서 일했다. 롱아일랜드 해협과 대서양에서 탐색 및 구조작전에도 참가했고 체사피크 베이서 2차대전시 전함을 가라앉혀 인공 산호를 건설하는 일도 했다. 그로톤에서는 색전증으로 고통받는 다이버들과 일산화탄소 중독과 괴저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고압 산소실에서도 일했다.
1980년 해군에서 제대, 대학에서 교육학 학사와 심리학 석사를 취득하고 특수교육 자격증을 받은 토비아스는 현재 코네티컷주 워터포드에 살면서 뉴런던 고등학교에서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아무도 네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지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직도 해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봄부터 가을까지 스노콜링을 하면서 취미 삼아 해양생물과 철새를 모니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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