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CAA영웅 레이트너, NBA에서 떠돌이 신세
미대학농구리그(NCAA)는 지난 2일 전통 강호 듀크대학이 난적 아리조나를 누르고 정상에 오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현재 NBA 소속선수 중 최고의 비운의 스타로 꼽히는 크리스천 레이트너가 바로 듀크대학 출신이다.
레이트너는 대학시절 역대 대학농구선수 중 ‘베스트 10걸’에 꼽힐 만큼 눈부신 활약을 펼쳤었다.
그는 대학농구 역사상 팀을 4강에 네 번이나 진출시킨 유일한 선수이고, 대학리그를 2년연속 재패한 마지막 선수다. 레이트너는 지금도 우울할 때마다, 92년 듀크 대 켄터키의 경기장면을 보며 착잡한 심정을 달랜다. 그 경기에서 레이트너는 마지막 순간 승부를 가른 환상적인 슛을 성공시키며 듀크에 우승컵을 안겨 주었다.
그러한 레이트너가 프로농구 NBA에 와서는 팀을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얼마 전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방출되어, 올시즌 최악의 팀 중 하나로 평가되는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NBA 커리어에서 다섯 번 째이자, 특히 지난 5년간 네 번째의 트레이드였다.
프로리그에 입문하기 전까지 레이트너의 농구인생은 항상 최고를 달려왔다.
그는 버팔로 소재 니콜스 프렙스쿨 시절 주챔피언을 두 번 제패했고, 듀크 시절에 대학농구를 2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이어서, 원년 드림팀 멤버로 참가하여 올림픽 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레이트너의 마지막 목표는 NBA 챔피언 반지였다.
NBA 프로농구선수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예 가운데 하나는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르는 것이다.
패트릭 유잉 선수도 뉴욕 닉스를 떠나기 전 16년간 한 팀에 있었고, 유타 재즈의 칼 말론 선수도 프로데뷔 이래 줄곧 한 팀에서 경기하고 있다. 어떤 선수가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른다는 것은 팀이 그 선수를 그만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레이트너의 프로농구 경력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의 대학농구 시절과 프로농구 시절의 명암이 극명하게 교차되는 부분이다. 레이트너의 현 계약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만료되며, 다음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 불투명하다.
사실, 레이트너는 댈러스 매버릭스 팀을 무척 좋아했다.
세계적인 육상스타 마이클 존슨이 살던 댈러스의 고급 주택을 구입한 것도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한 곳에 정착토록 허용치 않았다.
앞으로 레이트너는 워싱턴에 잔류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제 6의 팀으로 갈수도 있다. 댈러스 매버릭스가 그에게 다시 관심을 보인다는 풍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레이트너는 댈러스 복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번 자신을 버린 팀이 다시 그를 부를 것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 위저즈 팀에서 레이트너의 보스는 ‘농구 황제’라고 불리우는 마이클 조단이라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오리지널 드림팀의 멤버로 함께 뛴 적도 있다. 그 때만 해도 레이트너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한 컬럼니스트가 "서양에서 두 행운아를 꼽으라면 크리스천 레이트너와 링고 스타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레이트너가 대학농구 최고스타로 명성을 날리던 무렵, 현재 NBA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알론조 모닝이나 샤킬 오닐은 대학농구리그 정상에 명함도 못내밀고 있었다.
레이트너는 1992년 대학선수 NBA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팀에 의해 전체 세 번째로 선발됐다.
레이트너는 자신의 미네소타 지명이 그의 NBA 경력에 암운을 드리운 단초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니콜스 프렙스쿨이나 듀크대학에 들어가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타의에 의해 미네소타 팀에 들어갔고, 그는 프로농구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팬들이 프로농구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것은 NBA가 리그의 흥행을 위해 수시로 경기규칙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같은 NBA 프로농구계의 생리가 레이트너의 성격에는 맞지 않았다. 그가 바라던 이상적인 농구팀은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코치와 선수들이 몇 년씩 한솥밥을 먹으며 뭉치는 팀이었던 것이다.
레이트너가 NBA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언론과의 관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NBA 선수에게 주어진 두 가지 과제는 첫째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이고, 둘째 언론과의 관계라는 말이 있다.
레이트너의 대언론 관계는 처음부터 꼬여들었다.
듀크대학 시절 주류언론이 레이트너의 성적인 성향을 집중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레이트너가 그때부터 레이트너가 언론혐오증에 빠져든 것 같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레이트너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데 혈안이 되었던 기자들의 상당수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었다는 점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은 대학농구계에서 듀크와 쌍벽을 이루는 숙명의 라이벌이다.
여하튼 그후 언론에 비친 레이트너의 이미지는 오만불손하고 차갑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이트너를 잘아는 주변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좋은 친구라고 말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