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단
▶ 지지자들 "죄 없이 반아시안 정서에 희생"
미국내의 아시안 과학자들은 앞으로 상당기간 ‘리웬허 신드롬’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리웬허(60)는 자신이 근무하던 로스 알라모스 국립 핵무기연구소의 비밀정보를 빼돌린 혐의로 지난 9개월간 보석금조차 책정받지 못한채 교도소 독방에 구금됐다가 13일 풀려난 타이완계 물리학자다.
당초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부(CIA)는 그가 미 핵무기 관련 정보의 진수를 걸러내 중국정부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품고 조사를 벌였으나 58건에 달하는 스파이혐의를 뒷받침해줄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지 못했다.
결국 리는 민감한 정보를 허술히 관리했다는 중범혐의에 대해 유죄를 시인하고 당국의 추후 조사에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잃었던 자유를 되찾았다.
리의 지지자들은 이번 사태를 19세기말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한다. 유대계 프랑스군 장교였던 드레퓌스는 군사기밀을 유출시킨 반역혐의로 재판정에 섰지만 에밀 졸라를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은 그를 반유대주의 정서의 희생양으로 규정, 조직적인 구명운동을 펼쳐 법원의 무죄판결을 끌어냈었다.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의 제물이 됐던 것처럼 리 역시 주류사회에 팽배한 인종주의로 인해 스파이 누명을 뒤집어 썼다는게 그의 지지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리는 풀려났지만 후유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리의 수난을 지켜본 아시아계 과학자들의 동요는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벌써 로스 알라모스에 근무하는 아시아계 과학자들의 상당수는 전근을 신청하거나 조기은퇴했고 리의 케이스에 자극받은 젊은 동양계 두뇌들마저 국립연구소 기피현상을 보이고 있다.
주류에 진출한 아시아계 인사들도 웅성대고 있다. 버클리대학 아시안아메리칸학회의 L. 링 치 왕 교수는 "미국정부가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아시아인들을 도둑 아니면 스파이로 간주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아시아 커뮤니티가 술렁이자 국립과학위원회의 밥 스즈키 회장도 "과학과 공학분야의 미국내 학위취득자중 30-50%가 외국태생"이라며 "만약 미국이 이들을 배제한다면 지켜야할 국가군사기밀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미국사회에 알게 모르게 만연된 인종주의적 차별과 경계가 사라지지 않는한 제 2, 제 3의 리웬호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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