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5) 해양제국 백제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에 조각된 코끼리를 타는 사람. 먼 동남아시아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을 정확하게 조각해놓아 백제가 당시 해양 교류가 융성했음을 보여준다.

봉황을 우두머리로 만들어놓은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의 전체 모습.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에 원숭이 조각이 새겨져 있다.

절벽에서 중생을 구하러 "경행상" 걸어나오는 표현을 한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의 모습.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중앙에 여래(진리에 도달한 사람), 사진 왼쪽에 보살, 오른쪽에 반가사유형 보살좌상.

무령왕이 523년 세상을 떠났을 때, 백제인들은 무령왕의 죽음을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이라고 기록에 남겼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무령왕과 그 왕비의 능이다. 무령왕릉 이외 다른 능들은 도굴꾼들이 그 안의 물품들을 모두 훔쳐가서 주인이 확인 안 된 상태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의 소나무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

백제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봉황무늬 벽돌.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기원후 660년까지 678년간 존속했던 해양제국 백제는 서해(황해)를 무대로 아시아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많은 제후국과 교류하며 융성하고 화려한 문화를 이루었던 문화강국이였다.

부여 전 천왕사지 ‘천왕’이 새겨진 기와.

경주 불국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물 조각의 최극치 작품 다보탑(왼쪽)과 석가탑.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같은 걸작을 남겨놓은 백제의 석공들은 백제 멸망 후 통일신라의 불상과 탑을 백제의 예술을 초월한 또 다른 차원의 작품들로 남겨 놨다.

불국사 다보탑(오른쪽)과 석가탑.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에 있는 우리 문화에서 가장 많이 쓰여진 건축자재 돌로 만든 돌벽.
동아시아 대륙에서 한나라(기원전 206년~기원후 220년), 혼란했던 육조시대(220~589년), 수나라(581~618년), 당나라(618~906년) 시기 중에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기원후 660년까지 678년간 존속했던 해양제국 백제는 서해(황해)를 무대로 아시아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많은 제후국들과 교류하며 융성하고 화려한 문화를 이루었던 문화 강국이었다.
백제의 무령왕이 523년 세상을 떠났을 때 무령왕의 죽음을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 이라고 백제인들은 기록에 남겨 놨다.
무령왕의 관은 그 당시 남쪽바다 건너 야마토 왜국(倭國)에서 온, 우리 땅에서는 없는 금송 나무 목재로 만들었고, 왕릉의 석실은 대륙의 남조식 벽돌로 만든 양(梁)나라의 터널형 의 릉으로, 백제가 멸망한 후 1500여 년 동안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 잊혀져 있다가 1971년 에 처음 발굴되었다.
대륙과 백제의 역사적인 관계는 대륙의 남조 제(齊)나라 (479~502년)의 역사를 기록한 남제서 내용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490년에 북위(北魏) 선비족 기병 수십만이 백제를 공격하였다. 이에 동성대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선비족 군사를 기습하여 크게 깨뜨렸다. 동성대왕이 북위군의 공격을 격퇴한 공로를 치하하여 여러 태수(왕)를 임명하였다.”
동성대왕이 황제이기 때문에 제후국에 왕을 임명하는데, 수하의 왕들을 임명하는 지역을 현재 위치로 보자면 중국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유역까지 해당하는 영토이다.
부여로부터 이어온 백제(百濟)의 정체성은 국호를 한때 ‘남부여(南扶餘)’로 바꿀 만큼 우리 민족의 토착 세력에 기반을 두었고, 삼한시대에 마한 54소국 중에 ‘백제(伯濟)’라는 부족국가의 명칭을 계승하여 ‘백제(百濟)’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신라/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 150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 문화 깊숙히 남아있는 백제의 문화유산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백제의 난민들과 귀족들이 정착한 후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의 ‘일본’이라는 국호를 정한 섬나라 기록에 의하면 ‘야마토’라는 국호에서 7세기 후반에서 701년 사이에 ‘니혼(日本, 일본)’으로 부르게 되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후 많은 난민이 건너간 야마토에는 7~10세기에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이 150만 명이나 망명을 갔다고 한다.
인류 역사에서 항상 확인되는 인류와 같이 이동하는 개를 연구해보면, 일본에는 우리 민족의 토종견 진도개와 풍산개와 비슷하게 생긴 북방견들이 많다.
2001년에는 아키히토 일왕이 도쿄의 왕실에서 가진 68회 생일날 기자회견에서 “나 자신으로 말하면,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501∼523년 재위)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 역사책에 쓰여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혈연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해상왕국 백제의 넓은 영역의 많은 담로를 가름할 수 있는 백제인들의 세계를 그 당시의 예술품에서 볼 수 있다.
높이 61.8cm, 무게가 11.8kg이나 되는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에는 코끼리, 원숭이 등 먼 동남아시아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을 정확하게 조각해놓았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같은 걸작을 남겨놓은 백제의 석공들은 백제 멸망 후 통일신라의 불상과 탑을 백제의 예술을 초월한 또 다른 차원의 작품들로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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