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지금-8일은 세계 여성의 날
▶ 독버섯처럼 번진 ‘여성혐오’에 반작용, 페미니즘 관련 서적 불티…문화콘텐츠로 관심 고조 여성단체에 후원금 급증

▲페미니즘 도서를 베스트셀러로 만 든 저자들. 왼쪽부터 리베카 솔닛, 치 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정희진, 우 에노 지즈코.

할리웃발 페미니즘 열풍을 일으킨 여배우들. 왼쪽부터 에마 왓슨, 제시 카 차스테인, 제니퍼 로렌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즈음해 한국여성연합은 매년 ‘성평등 디딤돌’과‘걸림돌’을 선정한다. 그런데 성평등에 기여한 디딤돌 부문 2016년 수상자 중 하나는 이례적으로 사람이 아니다. 지난 1년간 SNS에서 활발하게 펼쳐졌던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운동이 그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듯 퍼져나간 ‘페미니스트 해시태그’ 운동의 주체는 여성이 남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임을 개개인의 자발적 의지로 선포한, 이름 모를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이었다. 2015년 2월10일 한 트위터 사용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SNS라는 한정된 공간을 뛰어넘어 여성단체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번개모임을 갖는 등 오프라인 행동으로 이어졌고, 트위터에 모인 선언 내용을 소책자로 제작해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궜고 여전히 뜨거운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있는 페미니스트 선언운동은 거대담론이 아닌 일상정치의 차원에서 변화의 든든한 단초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지난해를 한국 페미니즘 원년으로 다시 기록해야 할지도 모른다.
■독버섯처럼 퍼진 여성혐오 “더는 못 참아”
지난해 봄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김군’과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으로 촉발된 여성혐오 논란은 페미니즘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리는 이변을 연출하며 여성혐오 문제를 공론장의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그맨 장동민씨가 ‘옹달샘’ 멤버 유상무, 유세윤씨와 함께 과거 팟캐스트에서 쏟아낸 ‘역대급’ 여성혐오 발언들이 공개되며 오랜 세월 억눌려왔던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옹달샘 이후로도 여혐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래퍼 송민호의 랩 가사 “산부인과처럼 다벌려”는 한국산부인과협회의 성명서까지 불렀고, 래퍼 발굴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등장한 힙합 가사의 여성혐오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맥심 코리아 9월호의 여성 납치살해를 연상케 하는 화보는 국제적 논란을 일으키며 전량 폐기 사태를 낳았다. 일베의 화용론을 ‘미러링’한 안티 여혐 사이트 메갈리아의 등장에 환호와 우려와 교차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뜨거운 문화콘텐츠가 된 페미니즘
현실의 억압이 불러일으킨 페미니즘을 향한 의지는 페미니즘 도서의 판매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해 봄 출간돼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를 널리 유통시킨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1년 만에 1만5,000부가 판매되며, 그간 ‘아무도 안 읽는 도서 분야’에 다름 아니었던 페미니즘 부문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올 초 발간된 아프리카계 미국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출간 두 달 만에 7,000부가 팔리며 더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출간 2주 만에 인터넷서점 알라딘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들어간 이 책은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5주 연속 1위다. 지난달에는 사회과학 주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우리는 모두…’(1위), ‘남자들은 자꾸…’(2위),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3위),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6위), ‘페미니즘의 개념들’ (9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등 5권이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출판계로서는 ‘열 소설보다 페미니즘 하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론으로 무장한 젊은 여성들은 실질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여성단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성단체들 회원이 전체적으로 늘고 있는데, 특히 한국여성민우회는 후원금이 평년 대비 2배나 증가했다. 김희영 여성민우회 활동가는 “특히 젊은 여성들의 고민과 상담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거창한 문제는 차치하고 최소한 텔레비전에서만큼은 여성혐오를 안 보고 싶다는 호소가 많아요. 아무리 여성혐오 반대를 외쳐도 여전히 TV에선 여자는 명품백 사달라고 조르는 존재고, 이런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는 못하는 분노를 많이 토로해요.”
■할리웃발 페미니즘…더디지만 바뀐다
페미니즘 열풍의 진앙은 미국 할리웃이라고해도 좋을 정도로 지난 1년은 할리웃발 페미니즘 이슈가 뜨거웠던 한 해이기도 하다. 할리웃의 여성들이 오랜 세월 인내해온 성차별적 작업 환경-임금차별, 기회부족, 기타 부적절한 행위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특급 스타들에 의해 쉴 새 없이 나왔다. 미국 언론이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유엔 여성친선대사로 젠더 평등을 위한‘히 포 쉬(He for She)’ 캠페인을 시작한 에마 왓슨, 40세 이상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 기금을 만든 메릴 스트립,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임금 평등을 외쳐 여배우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패트리샤 아퀘트, 개런티 1위 여배우의 힘을 남녀 임금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데 사용한 제니퍼 로렌스, 블록버스터 영화 내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를 반대했던 제시카 차스테인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 ‘에밀리 블런트’에서 자신의 배역이 남으로 바뀔 뻔한 것을 폭로하며 남성지배 서사의 문제를 제기한 한 산드라 블록, 여성 타깃영화에 투자가 안 되는 할리웃을 비판한 셀마 헤이엑, 책으로 묶인 아디치에의 ‘TED’ 페미니즘 강연을 노래에 피처링한 비욘세도 빼놓을수 없다. 그 주체가 스타들이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할리웃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진이 매우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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