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장이식 형 극진 간호 동생 “형과 야구경기 보러가야죠”
9년간의 투병생활을 끝내고 신장이식 수술로 새 삶을 찾은 베니 장(왼쪽부터)씨와 어머니 김유진씨, 동생 케니 장씨가 함께 했다.
“형은 곧 내 생명과 같아요. 신장 한쪽을 떼어주지도 못했는데 형이 받는 고통을 나누는 거것은 당연한 거죠"
생명의 기적은 ‘사랑’에서 나온다. 9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형 베니 장(38)씨의 신장이식 수술 날 남동생 케니 장(35)씨는 기쁨과 슬픔, 만감이 교차했다.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 형이 살았다는 기쁨 뒤로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18세 기증자를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지난 2월 말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찾은 베니 장씨와 기나긴 형의 투병생활을 진한 형제애로 극복해 온 동생 케니 장씨, 어머니 김유진씨를 만났다.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며 신학 대학원을 다니던 베니씨는 28세에 고혈압으로 인한 신장병 진단을 받았다. 피곤함과 가려움증, 식욕부진 등의 요독증상이 점점 심해지며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아야 했다. O형 혈액형을 지닌 형에게 신장 한쪽을 주고 싶었지만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유전자 불일치로 이식수술을 할 수 없어 형은 한없이 신장기증을 기다려야 했다.
어머니 김유진씨는 “당시 아들 둘이 독립해서 함께 살고 있었어요. 베니에게 신장이식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큰아들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동생 케니가 완강하게 반대했죠. 건장한 체격의 형을 돌보기에 전 역부족이라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각오는 했지만 형이 받는 고통을 지켜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취업과 결혼은 머나먼 미래였다. 모든 생활을 ‘형’에게 맞췄고 삼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매니저를 하면서도 형과 하루 수십번씩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혹시나 전화를 안 받기라도 하면 어머니에게 긴급 요청을 했다.
투석을 해도 신장기능이 좋지 못해 혈액에 독성물질이 쌓이고 점점 창백해져 가는 베니씨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삼키길 7년, 그들 가족에게 신장이식이 가까워 왔다는 연락이 왔다. 이젠 살았다며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지만 또 다시 2년을 기다려야 했고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세인트빈센트 병원에서 새해 첫 수술자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지난 2월 말 드디어 긴 투병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형이 회복하면 함께 야구경기를 보러가고 여행도 가고 싶습니다. 일 년쯤 지나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에서 형과 둘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에요"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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