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렛일
뉴저지에서 캘리포니아로 갑작스레 이사 온 라루쏘는 새 동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었다. 여자친구 앨리를 만나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그녀의 전 남친 존이 끼어든 것이다. 어느 날, 가라데 도장의 수련생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존에게 늘씬 두들겨 맞은 후 라루쏘는 집 관리인 미야기에게 찾아가 가라데를 가르쳐달라고 간청했다.
요청을 받아들인 미야기는 훈련을 시작하지만 정작 처음으로 시킨 것은 가라데 기본동작이 아니라 자질구레한 일이었다. 정확하게 반원을 그리며 자동차를 닦고 왁스를 칠하라고 시킨 다음, 간격을 두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반복동작으로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벽을 수리하라며 못질을 시켰다. 거듭되는 잡일로 허송세월하는 느낌을 받은 라루쏘는 견디다 못해 “허드렛일이 아니라 무술을 배우러 왔습니다”라고 미야기에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미야기는 라루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에 라루쏘는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피하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단순노동으로 여겨졌던 일을 통해 가라데의 기본 동작을 습득한 것이다. 1984년에 상영된 영화 <가라데 키드>는 어떤 분야에서든 달인의 경지에 이르려면 탄탄한 기초실력과 오랜 기간의 훈련이 겸비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숙달된 고수로 인정을 받으려면 주변의 냉대와 무관심도 묵묵히 참아내야 한다. 1910년 “닭의 암을 일으키는 육종은 바이러스에서 온다”라는 논문을 통해 암의 발생원인을 바이러스로 규명한 프랜시스 라우스는 그의 주장을 인정받기 위해 56년을 기다려야 했다. 암 연구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쓴 업적으로 1966년에 이르러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기업이나 그룹도 마찬가지다. 구글이2001년도에 Gmail 아이디어를 내어 개발에 착수했을 때 거의 모든 직원들이 반대하고 불평을 토로했다. 이미 다른 이메일들이 시중에 널려있고, 타사 이메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굳이 Gmail로 옮길 이유가 없다고 예측한 것이다. 2004년 처음으로 베타 버전이 나왔을 때 실리콘밸리의 IT 관련자들이 약간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시큰둥했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오늘날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메일 사용자는 매년 5% 정도 감소하고 있지만 구글의 Gmail 사용자는 매년 20~40%씩 늘고 있다.
오늘날1만8,000개 커피숍으로 성장한 스타벅스도 시애틀에서 1호점을 개점한 이후 처음 13년간은 5개 점포로 확장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1957년 결성돼 영국 리버풀의 작은 클럽들 사이를 오가던 비틀스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64년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고, 1967년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다.
문학의 기인으로 불리는 작가 폴 오스터는 8살 때부터 야구에 빠져있었다. 당시 뉴욕 자이언츠팀의 외야수 윌리 매이스를 각별히 좋아해서 경기가 끝난 후 사인을 받으러 그를 찾아갔다. 흔쾌히 요구에 응한 매이스는 “연필 가지고 왔니?”하고 물었다. 오스터는 연필을 준비하지 못했고, 같이 있었던 부모도 필기도구가 없었다. 몇 분을 기다리다 매이스는 “연필이 없으면 어떻게 사인을 해주겠니?”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날 이후 오스터는 항상 연필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을 들였다. “만일 연필이 손에 있다면 언젠가는 사용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단번에 정상을 찍지 않으면 마냥 제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인생한방 이념, 초고속 다운로드, 단기완성에 익숙한 마음은 위의 성공 패턴을 읽어낼 여유가 없다. 그런 마음은 연필준비를 허드렛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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