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보고의 회한
북한의 핵공격 위협으로 가뜩이나 심난한 한국에 물경 30조원 규모의 용산개발사업이 펑크를 내 시끌벅적하다.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투자금 이자를 감당 못하고 엊그제 파산하는 바람에 한국 역사상 최대 개발사업이 그냥 ‘드림’으로 끝나게 됐다. 하지만 30여 투자사의 그 천문학적인 출자금도 시애틀의 빌 게이츠라면 혼자서 너끈히 감당하고도 남는다.
게이츠는 올해 재산이 670억달러로 세계갑부 서열 2위를 지켰다. 용산개발사업 투자금을 달러로 환산하면 고작(?) 330억달러이다. 게이츠 개인재산의 절반도 안 된다. 게이츠보다도 재산이 60억달러나 더 많아 세계최고 갑부로 군림하는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이 용산개발사업 부도 소문을 들으면 "고까짓 것, 내가 투자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포브스 잡지의 ‘세계 100대 갑부’ 명단에 오르는 부자들 재산은 우리 같은 서민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1억달러를 사과상자에 담는다면 100만달러 용량의 상자가 100개 필요하다. 보통 월급쟁이들이 100만달러를 모으려면 적어도 20년간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쫄쫄이 굶어야 한다. 게이츠 재산을 담으려면 그런 사과상자가 무려 6만7,000개나 필요하다.
사업가 아닌 운동선수나 연예인 중에도 갑부들이 많다. 야구투수인 펠릭스 허난데즈(시애틀 매리너스)는 2,500만달러, 농구선수 레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는 5,750만달러를 각각 벌었다. 배우 브랫 피트는 3,550만달러, 앤 해서웨이는 1,000만달러를 벌었고, 10대 가수 저스틴 비버는 5,500만달러를 벌었다. 작년 한해에 시간당 6,261달러씩 번 셈이다.
이들에 비하면 마이크 맥긴 시애틀시장이 번 17만9,798달러는 새발의 피다. 한국계인 매릴린 스트릭랜드 타코마시장은 그 절반에(8만8,000달러) 불과하다. 수 버드(시애틀 스톰스)는 프로농구(여자) 톱스타지만 고작 10만7,500달러를 벌었다. 금년 국세청의 세금보고 파일에는 지난해 1만5,000달러를 번 바리스타도, 달랑 2,000달러를 번 화가도 있다.
경제에는 수요공급의 법칙만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의 법칙도 작용한다. 한국에선 연간 1억488만원 이상을 벌면 소득상위 1%에 든다. 이들 1%가 한국 총 개인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2년간 6.97%에서 11.5%로 65% 늘었다. 초 상위인 0.1%의 소득비중은 1.79%에서 4.08%로 130% 늘었다. 부자일수록 더 빨리, 더 큰 부자가 됐다는 뜻이다.
한국 공직자들은 치부에 능하다. 임기를 마치면 대부분 재산이 전보다 급격하게 늘어난다. 그 때문에 장관후보로 지명됐다가 물먹은 사람이 많다. 심지어 총리후보까지 떳떳하지 못한 재산증식이 문제돼 자진사퇴했다. 김병관 국방장관 지명자는 부동산투기를 17 차례 했지만 두 번밖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부익부 공직자의 샘플이다.
물론 미국 공직자 중에도 부익부는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0년간 417회 강연을 통해 7,560만달러(800억원)를 챙겼다. 작년에만 52차례 연단에 서서 1,080만달러를 벌었다. 1회당 18만1000달러 꼴이다. 그는 특히 해외강연에서 큰 수입을 올려 총 215회 강연으로 4,490만달러를 벌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후광이 작용한 부익부이다.
부익부 현상은 어느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나 같은 칼럼쟁이들의 원고료는 200자 원고지 한 장당 대개 1만원이다. 시는 편당 10만원, 단편소설은 편당 120만원이다. 김수현 같은 소위 특A급 방송작가는 1회당 2,000만원~3,500만원을 받는단다. 4년제 대학 시간강사는 평균 4만7,000원을 받지만 교수들은 정년과 명예에 더해 평균 9,014만원을 받는다.
세금보고 때마다 빈익빈 처지를 실감한다.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은 하나님 섭리인 ‘마태복음 효과’라는 우스개가 있다. 마태복음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낙심할 것도 없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라는 성구(누가복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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