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지 마세요
‘인생 100세 시대’가 실감난다. 지난달 싱가포르 마라톤대회(10km)에서 영국의 102세 인도 이민자 파우자 싱이 1시간32분28초로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싱은 2년전 토론토 마라톤대회에서 세계 역사상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첫 100세 인간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런던마라톤 5회, 토론토마라톤 2회, 뉴욕 마라톤 1회 등 8차례나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북가주 소도시 윈터스의 뉴트 윌리스 노인(93)은 66년째 동네 주간지를 배달하고 있다. 세계 최고령, 최장기 신문 배달원인 윌리스는 그 신문사 주인이기도 하다. 한국 공주에서는 작년 10월 박기준 할아버지가 98세에 운전면허를 따 명사가 됐고, 지난주 태국에선 93세 호주노인이 영어를 가르쳐준다며 꾀어낸 이웃집 자매 4명을 한꺼번에 성폭행해 구속됐다.
미국의 100세 이상 노인은 5만3,364명으로 집계됐다(2010년 센서스). 90세 이상은 190여만명이나 된다. 30년간 3배 증가했다. 그해 한국인 평균수명도 80세를 돌파했다. 한국에서 2010년 태어난 아기의 예상수명은 80.8세다. 그 아기의 아기들 중 대다수가 99세까지도 살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때쯤엔 ‘구구팔팔이삼사’라는 술자리 건배구호가 헛소리가 된다.
이런 추세라면 나도 졸수(90세)까지 너끈히 살 수 있을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엊그제 AP통신 뉴스를 보고난 뒤 기분이 잡쳤다. 100세의 고작 절반을 살았을 뿐인 50대 이후 사람들이 앞으로 10년 내에 죽을 가능성을 ‘방법론적으로’ 규명한 의학 보고서였다. 구구팔팔이삼사를 외치며 하루가 멀게 마셔대는 50대 주당들에겐 술이 확 깰만한 뉴스다.
UC-샌프란시스코 연구진이 연방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50세 이상 2만 명을 10년간 추적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사망지수’를 산출했다. 미 의학협회지에 최근호에 게재된 이 사망지수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12개 항목을 질문하고 답변마다 다른 점수를 배정해 그 합산한 총점이 높을수록 조기사망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판단해 대책을 강구토록 하고 있다.
남자는 자동적으로 2점을 먹고 들어간다. 60~64세(남녀불문)는 1점, 70~74세는 3점, 85세 이상은 7점씩 가산된다. 동네를 한바퀴 도는데도 헐떡거리는 사람, 현재 또는 과거 암 진단자, 중증 호흡기 질환자, 심장질환자, 끽연자 등에게는 2점씩, 당뇨나 고혈당이 있는 사람은 물론 체중이 ‘정상적’이거나 ‘마른’ 사람들에게도 각각 1점씩 추가되는 게 이채롭다.
사망지수에서 ‘만점’(26점)을 받는 사람은 10년 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무려 95%에 달한다. 이런 경우는 85세 이상의 남자로 12개 질문사항에 모두 “예”라고 답한 사람들이 해당된다. 반대로 총점이 제로(0)인 사람은 10년 내에 죽을 가능성이 3%에 불과하다. 이 경우는 60세 미만으로 12개 질문에 모두 “아니오”라고 답한 ‘통통한 체격’의 여자들이 해당된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길고,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병력이 길수록,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깝다는 건 상식이지만 적정체중이거나 깡마른 사람이 과체중인 사람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건 뜻밖이다. 사망지수 조사를 주도한 UC-샌프란시스코 의대의 마리사 크루즈 박사는 노년의 저체중은 지병이 있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쨌거나 내 사망지수는 5점이지만 10년 내 죽을 가능성이 몇%인지는 알 수 없다. 보고서가 점수별로 밝히지 않고 있다. 크루즈 박사는 이 지수가 일반인 아닌 의사용이라며 노인환자들이 산정한 사망지수가 높게 나올 경우 이를 근거로 복잡한 진찰이나 강도 높은 치료를 포기하도록 설득해 연방정부의 메디케어 예산을 절감하는 게 그 취지라고 설명했다.
뻔한 얘기인데 괜히 겁먹었다. 그보다는 구구팔팔이삼사의 구현을 위해 열심히 수명을 연장해야 한다. 낙천적으로 살기만 해도 5년 연장된단다. 채식(5년), 균형 있는 일(3년), 적당한 운동(2년)도 권장된다. 부모의 장수(10년), 키가 작은 것(5년)도 유리하다. 특히 나는 ‘통통’하기까지 하다. 신물 나는 체중감량 다이어트를 중단해도 좋다는 좋은 핑계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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