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학기말 시험 부정행위로 적발된 하버드 대학생 125명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 등장하는 복녀와 같다.
정직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반듯하게 자란 복녀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열다섯 살에 80원에 팔려 시집을 간다. 무능력과 게으름으로 무장된 남편 덕분에 가난에 찌들다가 온갖 죄악의 소굴인 칠성문밖 빈민촌으로 밀려 나간다. 생계유지를 위해 복녀는 송충이 잡이에 나선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땀을 흘리지 않고도 임금을 받는 인부들을 목격한 것이다. 며칠 후, 작업장 감독은 복녀를 불러내어 다른 여인들처럼 손쉽게 삯을 받는 방법을 직접 실습으로 보여준다. 그 후 복녀는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남편은 아내가 생활비 벌어오는 것을 반긴다. 매춘에 눈을 뜬 아내가 타락으로 질주하는 것도 모르는 채.
자연주의 소설의 거장 에밀 졸라는 “유전과 환경이 개인의 삶을 좌우한다. 그 둘이 맞물려 천차만별 삶의 형태를 엮어낸다”고 역설했다. 복녀는 도덕성 함량이 높은 DNA를 물려 받았지만, 열악한 환경 앞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들먹일 의지를 포기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초적 본능을 따라야 했다. 그런 환경 결정론을 극복하려면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니체가 말한 초인, 즉‘자유 의지로 현존하는 가치를 재조명하여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에게나 통할까.
부정행위의 진원지 <정부 의회 입문>강의를 맡은 플래트 교수는 학생들에게 기말고사를 내주며 “집에 가서 해와라(Take Home Test)”고 일렀고, “오픈 북, 오픈 노트, 오픈 인터넷이지만 다른 학생과 상의하면 안된다”라는 간략한 지침을 주었다. 수강생 279명 가운데 125명은 플래트 교수가 조성한 환경의 희생양이 되었다. 왜 하필이면 시험을 강의실이 아니라 집에서 치르게 했을까. 강의가 정부와 의회에 관한 내용이라 학생들에게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미리 귀띔해주려 했을까.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은 마련치 못하고, 서로 앵무새같이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가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노력으로 돌리는, 썩은 생선 냄새가 나는 정치인들의 발자취를 따라보라는 교육적인 유도였을까.
플래트 교수는 대학에서 부정행위를 해보지 않은 학생은 천연기념물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안다. 오하이오 소재 마이애미 대학 조사에 따르면 10명 대학생 가운데 9명이 부정행위를 해본 경험이 있다. 학점을 올리려고, 친구를 도우려고, 공부할 시간이 없었기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등등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살아남기로 귀결된다.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이유는 발각되면 처벌 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즉 자의에 의한 규율엄수가 아니라 타자의 눈치를 보느라 부정행위를 못하는 것이다. 279명이 수강하는 강의라면 10~20명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 대학원 조교가 토론을 가이드한다. 만일 조교들을 동원하여 기말고사를 감독케하고, 개개인 학생의 지적 수준을 파악하고, 배움 자체에 관심을 두게 했더라도 125명 학생들이 무더기로 복녀가 간 길을 선택했을까.
서로 정보를 교환하느라 소셜 네트워크를 동원하고 모범답안을 공유한 125명에게는 팀워크를 키웠다는 노력의 대가로 A를 주고, 또한 나중에 국회로 진출하게 되면 지역 주민들을 적당하게 우려먹는 송충이 작업장 감독 같은 훌륭한(?) 의원이 될 것이라는 칭찬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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