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공부도 할 만큼 했으면서도 부모에게서 자립을 하지 못하고 얹혀살고 있거나 그 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도 부르고 혹자는 유사시에 부모의 보호 속으로 숨어든다고 해서 ‘자라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말 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는데 반드시 이런 상황에서의 정의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의 주변에는 정신적 캥거루족이나 자라 증후군을 많이 볼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부모의 과잉보호를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요즈음의 한인들에게서, 특히 젊은 부모들에게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과잉보호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1930년대에는 “자손과 재산은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라는 공익광고가 나갈 정도였다. 당시 인구증가율이 2.9%였다.
그러다 증가율을 2.0%로 둔화시킨다는 방침이 국가시책으로 채택되면서부터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나온 공익광고가 “아들 하나, 딸 하나면 만족합니다”였다. 이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나만 낳아 정성껏 키웁시다”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젊은 부모들에게 “하나 밖에 없는 내 새끼”란 생각을 갖게 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자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주려는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들에게서 나타나는 자녀양육 태도가 바로 ‘과잉보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잉보호의 원인은 부모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이러저러한 문제를 어려워했기 때문에 내 아이도 분명 어려워 할 것이고 내가 도와주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두 형제가 개를 기르면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어미를 잃은 새끼 사슴 두 마리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와서 형제가 한 마리씩 나누어 기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사슴을 기르는데 개들이 이 두 사슴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때 형은 아기 사슴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 개들을 야단치면서 막아 냈지만 동생은 사슴이 좀 힘은 들겠지만 개들과 함께 지내도록 하면서 개들이 괴롭혀도 짐짓 모른 척하면서 사슴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돌보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며칠 후 돌아와 보니 형의 사슴은 개들에게 시달리다가 죽었으나 동생이 기르던 사슴은 개들과 함께 뛰어 나와서 주인을 반겼다고 한다.
콩이 콩 밭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비바람을 견뎌내고 제 마음껏 자라면 콩을 생산하는 콩대가 되지만 사람들이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을 조절해 주는 시루에서 곱게 자라면 콩나물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어떤 부모가 돼야 할지는 자명해 진다.
이규성
가정프로그램 디렉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