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머니날은 5월 둘째 일요일이고, 아버지날은 6월 셋째 일요일이다. 이와 다르게 한국의 ‘어버이날’은 5월8일이다. “누가 어버이에요?” 어린이들의 질문이다. ‘어’는 어머니고, ‘버’는 아버지고, ‘이’는 사람을 뜻한다고 설명하면 재미있어 한다. 또한 ‘어버이’라는 말은 “엄마, 아빠 중에서 누가 더 좋아?” 라는 어른들의 짓궂은 장난을 피할 수 있다. 그때마다 ‘어버이’는 명답이 되니까.
왜 이런 날들을 정했을까. 한국의 어느 7남매가 면담자에게 대답하였다. “부모님께 감사해요. 우리를 낳아서 길러주셨어요”라고. 실감이 난다. 그렇게 많은 형제자매를 낳아 주셨으니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잊기 쉽다. 흔히 길러 주신 것은 생각하지만, 낳아 주신 것은 잊기 쉽다. 우리는 부모님의 연장선에 있는 분신이지 않나.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있음을 자랑으로 알고 소리 높이 외치길 바란다.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라고.
이 외침의 뜻은 무엇이며, 어느 때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될까. 뭐니 뭐니 해도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가 첫 번 기회일 것이다. 내가 오늘부터 아빠·엄마가 되었으니 감격할 수밖에 없다. 이 감격 때문에 자녀를 즐겁게 키우게 된다.
그러다가도 부모는 가끔 자녀들에게 권위나 위엄을 보이고 싶을 때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고 외치게 된다. 그런데 요즈음의 자녀들에게선 그런 방법의 약효가 거의 나타나질 않는다. “아빠 엄마가 암만 그래도 내 생각대로 하겠어요”라는 듯 제 멋대로 한다. 그런데도 부모는 화를 내기보다 속으로 기뻐한다. 내 아들 딸이니까,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가라는 뜻인가 보다.
또 부모의 사랑을 과시할 때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를 외친다. “우리 딸, 우리 아들 장하다. 바로 내가 아빠다. 내가 엄마다.” 얼마나 보기 좋은 장면인가. 하지만 이런 장면 대신 서로 말없이 지내는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마음으로 느끼면 되었지, 그걸 꼭 표현해야 하는가”라며.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포옹하는 것, 키스하는 것을 본 일이 없어요.” 어떤 어린이의 말을 들었다. 한국 가정에서는 자녀 앞에서 부모의 애정 표시는 거의 금지 사항이다. 부모가 자녀의 거울이라면 자녀들도 아마 비슷한 가정생활을 하지 않을까. 자녀에 대한 애정이나 부모 상호간의 애정 표현이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라고 외치는 것이 부모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까. 앞에 설명한 것처럼 자격 표명, 긍지 소유, 책임 절감, 애정 표시 등의 표현으로 자기의 존재를 상대방에게 뚜렷하게 알리는 효과가 있으며, 또한 부모가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자녀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까. 그들은 부모가 주는 안정감, 보호에 대한 감사, 일상 생활의 규칙, 가족의 협력, 상호 이해의 중요성 등의 시범을 보이는 부모에게 편안하게 기댈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나는 딸이다” “나는 아들이다”하고 마주 외칠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두 제각기 나는 무엇이라고 외침으로써 세상이 너무 소란할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들만 듣는 재주가 있다. 제각기 외치는 소리는 다양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도우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길을 열어 준다.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줄 아는데, 그러면 무엇이라고 외칠 것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세상을 향해 자랑스럽게 외칠 말이 있다. “나는 학교 엄마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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