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은 뜻하지 않게 미국 정치철학에 대한 논쟁이 워싱턴 DC 정치 중심지 한복판에서 대낮에 조용하지만 뜨겁게 벌어진 날이다. 비록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행해진 논쟁이긴 했으나 그 내용이 앞으로 미국 정치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심각한 정치 철학에 관한 대립이기 때문에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다.
그 논쟁이 일어난 상황은 이러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주요 정치문헌들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공공기록보관소(National Archives)에서 9.11 사태 이후 240여명의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을 감금하고 있던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는 논리의 근거로 ‘미국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의 힘을 내세우지 아니하면 이 나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음을 혼신으로 믿고 있다”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우리의 가치’를 위하여 우리의 안보를 희생할 필요가 없지만 동시에 우리의 안보를 위하여 ‘우리의 가치’를 희생할 필요가 없음을 미 국민들은 알고 있다”고 오바마는 계속 주장했다.
오바마의 연설이 끝난 지 2시간쯤 후에 체니 전 부통령은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국책연구소인 미국 엔터프라이즈 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서 오바마의 정치철학에 대항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오바마가 관타나모를 폐쇄하며 제창하는 “삼각주의(안정주의)는 정치 전략이지 ‘국가안보’ 전략은 아니다”라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오바마와 체니 논쟁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미국가치’ 대 ‘국가안보’라고 하는 정치철학에 대한 상반된 견해/입장이다. 미국가치 대 국가안보의 정치철학 논쟁은 주장하는 견해/입장을 2개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이념적 상대주의 대 이념적 절대주의의 논쟁이다. 국가안보 이상으로 중요한 미국가치는 이념적 절대성을 뛰어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민주적인 가치’를 의미한다고 오바마는 역설한다. 민주적인 가치란 ‘정의와 정당한 절차’(Justice and Due Process), ‘견제균형과 책임성’(Check-and-Balance and Accountability)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미 국민들은 절대주의자들이 아니며, 우리의 문제들에 대하여 경직된 이념을 부착시키라고 우리를 선출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가치란 이념적 절대주의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국가안보’는 ‘자유 수호’라는 이념적 절대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체니는 주장한다. 자유 수호라는 이념적 절대주의가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의미이다. 체니는 “테러리즘 대항 투쟁에는 중도기반이란 없으며, 중도방책은 당신을 반나체로 드러내게 한다”고 오바마의 중도정책(이념적 상대주의)을 반박하였다.
둘째, 오바마-체니 논쟁은 법적 수단 대 전략적 목적의 논쟁이다. 오바마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고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을 취급하는 “적법한 법적구조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부시 행정부의 관타나모 정책을 ‘특수정책’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반하여 체니는 국가안보의 선택이란 종합적인 전쟁전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최악의 테러리스트들을 미국 내로 들이는 것은 큰 위험을 도발할 원인이 되고 앞으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오바마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정책을 극구 반대하였다.
국가안보를 취급하면서 이념적 상대주의와 법적 수단을 내용으로 하는 ‘미국가치’(민주가치)를 앞세울 것이냐 아니면 이념적 절대주의와 전략적 목적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안보’(자유 수호)를 강조할 것이냐 하는 정치철학상의 논쟁은 워싱턴 정가에 앞으로 계속 열띤 논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더 나아가 미국의 우방과 적성 국가들이 동시에 미국의 ‘미국가치’ 대 ‘미국안보’ 정치철학 논쟁의 귀추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백순/ 연방 노동부 선임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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