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08년 최대 감원
2008년 미국에서는 1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 10월 한 달에만 24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연방 노동부는 지난주 발표했다. 그 보다 더 나쁜 소식도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와슨 와이어트이라는 조사기구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미국의 고용주들 중 4분의1은 2009년 감원을 할 전망이다. 지난 10월 실업률은 6.5%로 14년래 최고를 기록했지만 거기서 더 나가 1992년의 7.8%, 더 심하게는 1982년의 9.7%에 까지 도달할 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6년 전 감원 당한 매니저들 삶 추적해 보니
원하던 일 시작하며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
실직이 오히려 전화위복된 성공 사례들
실업률이 뛰어오르고 경제는 수십년래 유래가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SA 투데이는 지난 1992년 대대적 감원의 희생자였던 한 회사의 매니저들의 삶을 추적, 16년 후 그들이 어떤 상태에 와 있는 지를 보도했다.
그들의 삶을 보면 감원을 당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감원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1992년, 캘리포니아 비살리아의 루이스 리치 칠면조 가공공장은 샌호아킨 밸리의 농업지역인 털레어 카운티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였다. 불과 2년 반전에 1억달러를 들여 공장을 새로 지었다. 그래서 당시 주인이었던 필립 모리스가 갑자기 공장 문을 닫고 자동 시스템으로 가동되는 크레프트 파미산 치즈 공장으로 바꾸면서 1,450명을 감원했을 때 충격의 파장은 엄청났다.
시기적으로도 더 할 수 없이 나쁜 때였다. 미국에서 17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감원이 절정에 달했던 1991~1993년의 꼭 중간에 비살리아 칠면조 가공 공장이 문을 닫은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앞이 캄캄한 일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공장이 문을 닫은 것은 잘 된 일이라고 파블로 마르티네즈(55)는 말한다. 멕시코 이민자로 뼈 제거 부서의 수퍼바이저 자리까지 올라 연간 4만달러(지금으로는 6만1,000달러)를 벌던 그는 현재 멕시칸 식당 2개를 운영하면서 종업원 24명을 두고 있다.
지금 다시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마르티네즈를 비롯, 비살리아 공장 매니저들의 경우를 보면 불경기에 직장을 잃어버리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직장이 없는 탓에 더 의욕적으로 더 열심히 더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더 성공한 케이스들이 많이 있다.
USA 투데이는 비살리아 공장 매니저들 중 사망한 사람 2명을 빼고 13명의 삶을 추적했다.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 된 이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려서 속은 몹시 쓰렸지만 지나고 보니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새로 자리 잡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당시 물품담당 매니저였던 스티브 코치(49)는 말한다. 그는 감원 당한 후 배스킨 로빈스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는데 자고새면 불평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자 아내가 그를 법대에 등록시켜 버렸다. 법 공부는 그가 평생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내 캐런은 그에게 법대를 가든지 입을 다물라며 등 떠밀어 학교로 보냈다.
이제 그는 법률사무소를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이미 소득은 평생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채권자 권리, 파산 법, 부채 회수가 전문 분야인 그는 왜 진작 학교로 가지 않았을까가 지금 유일한 후회이다.
공장 엔지니어링 매니저였던 샘 로건(63)은 평생 꿈꾸던 주식 브로커가 되어 지금 메릴린치에서 중역으로 일하고 있다. 감원 당하기 전 그는 직업상 4~6년마다 한 번씩 가족을 이끌고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1989년 이후 비살리아 토박이가 되었다. 처음 주식 브로커가 되었을 때는 수입이 60%가 줄었다. 하지만 장시간씩 일한 덕분에 4년 후에는 1992년의 연봉인 6만달러(지금의 9만1,000달러)를 회복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마이크 윌슨(63)은 재구아 등 수집용 차량 보수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성장해서 지금 1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차량 한 대를 새 것처럼 만드는 보수비용은 12만5,000달러에 달하기도 한다. 윌슨의 자동차들은 자동차 쇼에 나가 1등을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다.
사람들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믿지만 그건 잘못이라고 그는 말한다. 창업주가 되면 고객의 95%를 만족시켜야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반면, 대기업 일자리는 보스 한명을 기분 나쁘게 하면 날아가 버린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56세가 된 랜디 클로슨은 특별 프로젝트 담당 매니저였다. 그는 컴퓨터 판매와 수리 사업을 시작해서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었다. 엔지니어링 매니저인 론 데이비스(74)는 지난 1998년까지 동전 작동 세탁장을 운영하다가 아내가 죽고 난후 오랜 친구와 결혼해 지금은 달라스에서 행복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멕시칸 식당을 운영하는 마르티네즈는 처음 식당을 연 후 하루 서너 시간씩 잠을 자면서 일에 전념했다. 처음 연 식당이 지역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자 1996년 그는 4마일 떨어진 곳에 두 번째 식당을 열었다.
공장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은 그들 매니저가 대부분 창업 정신을 갖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장에서 같이 일할 때는 ‘콩가루 집안’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지만 결국 그런 열의가 지금처럼 자리를 잡고 성공을 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이들 매니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부인들이 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는 점이다. 남편이 직장을 잃어버리자 대부분 아내들은 직장으로 뛰어들었다. 주식 브로커 로건의 아내 마리는 1992년 당시 보조 교사였다가 풀타임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특수교육 석사학위를 받아 지금은 털레어 카운티 프리스쿨 인력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식당을 하는 마르티네즈 역시 아내가 없었다면 식당 개업은 생각도 못했다. 당시 아내 마리아는 하루 12시간씩 식당에서 일을 했다. 마리아는 지금 딸과 함께 두 번째 식당의 운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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