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생각
봉윤식 기자
중국 후한 시대의 일이다. 양진이라는 사람이 태수로 부임할 때 현령 벼슬을 하고 있던 왕밀이 한밤중에 몰래와서 선물을 건넸다. 그가 거절하자 왕밀은 밤중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며 받기를 거듭 청했으나 양진은 어찌 자네와 나 두 사람만이 아는 일인가?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자네가 알고(子知), 내가 알고(我知) 있지 않은가?하며 끝내 거절했다. 이를 ‘사지(四知)’라 하는데 세상에는 비밀이란 없다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일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관직에 오른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주위 아무도 모르게 얘기하자는 사람을 조심하라. 비밀리에 만나고자 하는 사람에겐 뭔가 목적이 있다. 그를 만나면 반드시 심각한 일이 생기고 만다. 기본적으로 비밀은, 특히 공적인 부문에서의 비밀은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옳지 못하다. 비밀로 인해 정보를 제한당할 경우 게임의 결과에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우위와 그에 못지않은 패배만이 남기 때문이다. 경험상으로도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 정당하거나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몇년전 투자자에게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안겨준 엔론사 분식회계 사태나 60여년전 일제 패망 후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국을 분단한 신탁통치의 과정이 그랬다. 최근 LA에서 교인들 몰래 교회 재산을 빼돌리려다 법원의 중단 명령을 받은 청운교회의 사례 역시 비밀보다는 공개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11일 시카고 참길 장로교회에서 열린 중서부 한미노회의 정기 노회는 그래서 실망스럽다. 노회는 가나안교회의 탈퇴건과 관련해 공개리에 진행되던 회의를 돌연 비공개로 전환, 투명한 해결 과정을 지켜보려던 많은 이들의 바람을 저버렸다. 다른 안건에는 모든 이들의 방청객 참석을 허용하면서 유독 가나안교회 건에 대해서만 언론사 기자는 물론 당사자인 교인들에게 마저 비밀을 지켜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비공개 전환을 주장하며 제시한 이유 역시 석연치 않다. ‘가나안교회 사태는 한 개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전역의 한인 교회, 나아가 한인 커뮤니티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 ‘그렇기 때문에 비공개 회의에서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해야 한다’ 등이 노회측이 근거로 들었던 이유다.
하지만 정말 가나안교회의 분쟁이 커뮤니티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원래 비공개인 회의도 공개로 전환해 되도록 많은 커뮤니티 인사들의 의견수렴을 하는 게 옳았다. 또 비공개 회의에서 가슴 속에 있는 솔직한 얘기를 하겠다는 말은 그동안의 공개회의에서는 진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밖에 안된다. 둘 중 어느 경우도 노회측의 비공개 회의 강행을 납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사지. 여기에 교회는 하나를 더 붙여 ‘주님마저 아신다’는 오지(五知)를 명심해야 한다. 사람에게 부끄러운 비밀이 주 앞에서라고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정기 노회 당일 설교의 내용은 ‘주의 동역자가 세상 앞에 떳떳하게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앞다퉈 ‘아멘’을 외쳤던 사람들은 그날 모두 어디에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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