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일보가 창간 36돌을 맞았다. 1968년 개정 이민법 발효로 한인 이민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던 당시 한국일보는 잠재태 밖에 갖추지 못한 신생 커뮤니티의 눈과 입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미국사회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소수계 중의 소수계 신문, 변두리 중의 변두리 커뮤니티였다. 그러나 36년이 지난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변화는 눈부시다. 1면 짜리 미국 현지판으로 시작한 본보는 하루 평균 150면을 발행하는 전국 종합지로 성장했고, 제퍼슨가를 따라 식당, 마켓 몇 개 자리잡았던 한인 상가는 LA 중심대로의 고층 빌딩들을 잠식하며 거대한 상권을 넓혀가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는 한국일보라는 구심점을 토대로, 한국일보는 한인사회의 발전을 원동력으로 같이 성장하고 발전해온 상생의 30여 년이었다.
이민사회는 보통 30년을 단위로 한 단계씩 발전을 한다. 이민 1세가 주도하던 커뮤니티가 세대교체를 하면서 2세들의 리더십이 도입되는 시점이다. 맨주먹으로 황무지를 개간하는 피땀의 집념이 1세들의 추진력이라면 2세들은 미국 교육과 주류사회 네트웍이라는 새로운 힘을 커뮤니티에 들여온다. 맨발로 걷던 커뮤니티가 자동차라는 교통수단을 얻게 되는 발전이자, 미성년의 커뮤니티가 성년의 커뮤니티로 한 단계 올라서는 진화이다.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 변화는 최근 여러모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연말 남가주 어바인에서 한인 시의원 2명이 동시에 탄생해 우리 스스로 놀란 일이 있고, 이번 LA 시장 선거에서는 주류 정치인들이 한인사회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판이했다. 선거기금 모금을 위해 체면치레로 얼굴을 보이던 게 고작이던 주류 정치인들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한인사회를 방문하고, 한인 정치단체가 주선한 공개 토론에 참석했으며, 선거 막판에는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시장 당선자와 제임스 한 현 시장이 앞다투어 본보를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게다가 차기 시장정부 인수위원회에 한인이 5명이나 포함된 것은 한인이민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커뮤니티가 일궈온 정치력, 경제력, 그리고 인적자원이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는 증거이다.
성년이 되었다는 것은 책임과 권리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 할 때 적정한 파이가 돌아온다. 다민족 사회에서 제몫을 하는 존경받는 커뮤니티가 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의식의 변화라고 본다. 변두리의 소수집단 멘탈리티에서 벗어나 이 사회의 일원으로 분명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겠다. 더 이상 남들이 주도하는 흐름에 묻어 가는 피동적 삶에 머무를 수는 없다. 둘째, 커뮤니티가 익숙해져야 할 것은 투명성이다. 무대 주변에서 중앙 무대로 들어서면 우리끼리 쉬쉬하며 덮는 일은 불가능하다. 본보에 실린 기사들은 다음 날이면 번역되어 주류사회 관련 기관이 자료로 삼는 일이 다반사이다. 셋째, 커뮤니티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신뢰도 회복이다. 한인이 한인 업소를 믿지 못하는 작은 일부터 최근 연이어 터져 나오는 거액의 투자 사기까지, 언제부터인가 한인사회에는 불신의 그림자가 깊다. 성공에 대한 조급증, 당장에 성과를 보고 싶은 한탕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개인도, 집단도 신뢰라는 바탕 없이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미주 이민의 영원한 정신적 지도자, 도산은 100년 전 청소 운동으로 우리 민족의 의식개혁을 시작했다. 불결하고 냄새나며 정돈 안된 한인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몸소 청소를 함으로써 동포들의 외양뿐 아니라 정신을 일신했고, 주변 미국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지금 한인사회는 또 다른 차원의 청소 운동이 필요하다. 탈세, 유명 상표 도용, 매춘 등 불법·편법의 때와 악취를 씻어내는 청소이다. 성년을 맞은 커뮤니티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은 신뢰도와 투명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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