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이 T J 펜펠 소장(제일 왼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후 UC버클리 관계자와 정상기 주 상항 총영사(오른쪽 2두째) 등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내 모든 인생이 직장
내 모든 인생이 직장이었고 일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려는 일에 미쳐야 만 성공합니다.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은 30일 UC버클리 한국학 센터와 동아시아 연구소 초청으로 캠퍼스 내 멘스 패컬티 클럽(Men’s Faculty Club)에서 강연회를 갖고 경영 마인드를 이같이 소개했다.
장 회장은 이날 애경그룹의 경영철학과 급변하는 세계경제에서 한인들의 경영전략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간단한 가족 소개와 더불어 1970년 애경의 창립자였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평범한 4남매의 어머니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장 회장은 1972년 주위의 반대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애경유지공업 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는 여성 기업인이 전무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여성이 어떻게 남성위주의 회사에 사장이 되냐, 암탉이 울면 집 안이 망한다, 사장이 되면 사원들이 떠날 거이다 등 온갖 소문이 무성했었다고 장 회장은 말했다.
하지만 미국 체스넛힐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결국 경영에 뛰어들었다.
전공이기 때문에 (제조부분인) 공장은 이해가 갔지만 관리는 문외한 이여서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상을 당해 집에 있던 2년 동안 경리공부를 하면서 경영분석을 배웠습니다.
장 회장은 일일이 손이 가야하는 주먹구구식 수작업에서 탈피, 자동기계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신 제품 개발을 위한 실험실의 지원을 늘리는 등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또 유명 외국제품과 수시로 품질을 비교하는 등 자사제품의 고급화에도 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판단한 장 회장은 당시 이 분야에서 최고인 프랑스 기업 ‘유니레버’와 손을 잡게됐고 제휴를 통해 품질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장 회장은 외국 마켓팅을 도입하고 경영방식도 서구적으로 바꾸었다.
장 회장은 사장에 올랐을 때만해도 한국에는 10개의 유지 회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2개만이 남아있을 뿐이라며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미친 듯이 열심히 한 노력과 열정, 회사원 존중, 교육을 통한 사원의 질을 높이 것들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간능력은 무한하다고 강조하고 남들이 쉴 때 일한다는 자세가 개인과 기업의 성공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해 장 회장은 정치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야 만 한국이 더욱 발전 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남성우월주의라는 고전적 의식과 사회제도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연이 끝난 후 동아시아 연구소 T J 펜펠 소장이 장 회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김판겸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