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재발견할 수 있었던 귀한 경험”
“LA폭동때 정치력 신장 필요성 절감”
어바인 시의원 선거에서 강석희(51)씨가 과연 어떤 결과를 얻어낼 지에 대해 OC 한인사회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사실 한인사회의 여론은 강씨가 비록 한인들의 눈에는 ‘준비된 후보’로 비쳐졌지만 선거에 출마한 경험도 없고, 특히 당락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주류사회에서는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시의회 입성의 꿈을 이루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는 당선을 일궈냄으로써 한인사회의 정치 신데렐라로 부상했고 그의 당선 소식은 한인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마디로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증명했기 때문이다.
“후보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뛰어들면서 유권자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키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피곤함을 느꼈지만 나와의 싸움에서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힘이 솟구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거 출마는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합리적이며 끈기가 있고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밝히면서 스스로 이 같은 성격 덕분에 이번 선거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많은 유권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강씨처럼 열심히 표밭을 다지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서울 태생으로 고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고 77년 미국에 이민 왔다. 15년 동안 전자제품 판매점 ‘서킷 시티’에서 근무했으며 열성을 다해 일한 관계로 회사의 유일한 아시안 매니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92년 발생한 ‘LA 폭동’은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된 결정적인 동인이다. “자유를 신봉하는 나라에서 폭동에 의해 한인들의 생활터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는 우선 한미장학재단에 관여했다. 미래의 자산인 훌륭한 2세들을 키워 주류사회에 진출시켜야 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후 민주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류사회에 대한 한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등 사명감 있는 한인사회의 리더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시의원에 당선됨으로써 한인사회의 정치력을 키우는 밑거름 역할에서 일보 전진, OC의 대표적인 전원도시로 중산층이 밀집 거주하고 있는 어바인에서 한인뿐만 아니라 아시안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그는 자신의 당선이 이민자들에게 희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 일꾼으로서 지역사회 발전에 밀알이 되는 공복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인 강원희씨와에 존&존에서 미생물학자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 앨런, 내년에 법대에 진학할 예정인 딸 앤지 등 1남1녀를 두었다.
<황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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