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사는 이야기
▶ 전효숙 (윌셔연합감리교회 지휘자)
내 이름은 원래 "전효숙"이다. 태어나서부터 부모님이 그렇게 불렀고, 자랄 때 이웃과 친구들이 모두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애인이 생겼을 때까지만 해도 그 이름이 유효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른이 되면서 점점 멀어지더니, 김씨 집안에 시집을 가면서 "전"씨 성은 아예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내 이름은 "며늘아이"가 되기도 했고 "새댁"이 되기도 했다. "새움이 엄마"가 되었다가 "선생님" "미세스 김" 등으로 변하면서 요즘은 아예 "아줌마"가 통칭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이름은 "할머니"인 것을 알고 있다.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아직 수술이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맏아들의 서명이 필요해서 사방팔방으로 오빠를 찾느라 몇 시간이나 지체된 것이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종일 연락이 안되는 오빠가 밉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날아온 나를 엄마의 친족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병원 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미 결혼한 몸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엄마의 법적 친권자가 아니라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었다. 시집가서 내 이름을 뺏겼는데, 이제 친정으로 돌아 갈 수도 없게 된 나는 누구인가?
결혼 전까지 나의 호주는 아버지였다. 결혼한 후로는 시아버지가 내 호주였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나의 호주는 남편이 되었다. 만약 한국에 살면서 남편이 나보다 먼저 죽게 되면 아들이 나의 호주가 될 것이고, 만약 아들 마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손자가 나의 호주가 된다. 내가 스스로 나의 호주가 될 날은 없다는 말이다. 유교의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실천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일이다. 아니, 손자에게까지 종속된다면 차라리 "사종지도"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이효재, 신정모라, 안이영노, 김강해인, 고은광순, 조한혜정 . . . 최근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여류 명사들의 이름이다. 일본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껏 써오던 아버지 성에 어머니 성을 함께 넣어 쓰고 있는 엄연한 한국인의 이름들이다. 이 분들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남성 중심의 호주제를 바꾸자는 것인데, 매년 3만 명 가량의 여아가 낙태되고 있는 것이나, 신생아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 문제가 "아들만이 대를 잇는다"는 성차별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운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쪽 부모의 성을 따르다 보면 2세만 되어도 성이 여덟 자까지 늘어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두 성을 조합했을 때 듣기 거북한 성씨들이 탄생할 수도 있다. 배씨와 신씨의 자녀는 ‘배신’이 되고, 방씨와 구씨는 ‘방구’, 피씨와 박씨는 ‘피박’, 임씨와 신씨는 ‘임신’, 변씨와 태씨는 ‘변태’. 송씨와 장씨는 ‘송장’이 된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그다지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나도 공감은 하면서, 얼른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이십 년 전, 처음으로 여권에다 영어 이름을 써야 했을 때, 내 이름은 공식적으로 "김효숙"이 되었다. 이니셜로 ‘전’을 간직하긴 했어도 별로 쓸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독일사람이 될 것도 아니었고, 미국사람이 되겠다고 계획한 적도 없는데 괜히 잘난 척 하며 미리부터 성을 바꿔 썼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동안 스스로 김효숙이라는 이름을 써 본적이 없다. 내가 무슨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이 구태여 나를 전효숙으로 불러주었기 때문이고, 그게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간 같이 교회에 다닌 사람들도 나에게 성이 다른 남편이 있다는 것을 얼른 이해하지 못해 짝짓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 소식지 편집을 맡은 분은 성을 잘못 써서 미안하다며 구태여 내 이름을 김효숙으로 수정하기도 했고, 어떤 분은 나중에야 짝을 알아보았지만, 남편을 "전 집사님"이라고 불러 폭소를 터뜨린 적도 있다. 전효숙, 김효숙 보다 예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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